주식의 나라와 별식의 나라
우리 매장에 오신 중국 손님들은 라면, 짜장면, 국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드시는 도중 "밥을 좀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이상한 사람이네...'라는 표정으로 "괞찬하요.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곤 면을 먹고는 대부분의 국물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1. 주식은 땅이 결정한다
식탁의 중심은 결국 ‘땅’이 정한다.
중국 북부의 건조한 평야, 한국의 사계절 논농사, 베트남의 물이 넘치는 삼각주.
세 나라의 기후와 환경이 주식 문화를 만들었다.
중국 북부는 비가 적고 벼농사가 힘들어 밀농사가 발달했다. 그래서 만두, 국수, 빵(饼) 같은 밀 음식이 주식이 되었다. 한국은 산이 많고 겨울이 길지만, 남부 지역 중심으로 벼농사가 가능했다. 그래서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이자 생존의 상징’이 되었다. 베트남은 1년에 2~3모작이 가능한 논의 나라. 쌀이 너무 풍부해서, 식사의 기본은 언제나 풍성한 '밥(Cơm)’이다.
2. 베트남 사람의 하루 식탁
베트남 가정의 식탁을 보면 한국과 놀랍게 닮았다. 밥, 국, 반찬(rau, thịt, cá), 그리고 과일. ‘퍼(phở)’는 여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퍼는 아침에 밖에서 사 먹는 음식, 혹은 손님을 대접할 때, 가끔 생각날 때 먹는 ‘별식’이다. 베트남 사람에게 퍼는 한국 사람에게의 칼국수나 설렁탕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매일 집에서 끓이지는 않는 음식인 것이다.
3. 쌀국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퍼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의 쇠고기 스튜(pot-au-feu)와 중국인의 면문화가 베트남에서 만나 탄생했다. 쇠뼈 육수에 쌀로 만든 국수를 넣은 새로운 음식, 그게 바로 퍼였다.
이후 북부 하노이에서 시작해 남부 사이공으로 퍼지며, 단맛이 강하고 허브가 풍성한 남부식 쌀국수로 발전했다. 오늘날 ‘베트남 = 쌀국수’라는 인식은 이 음식이 해외 이민자들에 의해 세계로 퍼졌기 때문이다. 즉, 세계화의 결과로 상징화된 음식이지, 일상 속 주식은 아니다.
4. 중국·한국·베트남 식문화의 교차점
중국인은 밀로 만든 면을, 한국인은 쌀로 지은 밥을, 베트남인은 밥을 기본으로 하되, 가끔 쌀로 만든 국수를 즐긴다. 이 세 나라의 식탁은 다르지만, 모두 곡식을 중심으로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단지 그 곡식이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중국의 면에는 대륙의 실용성이, 한국의 밥에는 공동체의 정서가, 베트남의 쌀국수에는 문화의 융합과 여유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