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일까, 낙후의 상징일까?
하노이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바로 집과 카페 사이를 스치듯 달리는 철로마을(Train Street)이다. 좁은 골목 사이, 기찻길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차가 지나가기 전 “Train is coming!” 외치는 주민들의 소리가 관광객들의 웃음과 섞인다. 사진 속 그곳은 언제나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발견했는가? 그 철로는 한 줄뿐이라는 걸.
하노이에서 호찌민시까지 뻗은 베트남의 ‘통일철도(Đường sắt Thống Nhất)’는 약 1,726km 길이다. 이 거리를 기차로 달리면 32시간이 걸린다.
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25km를 KTX로 이동하면 약 2시간 15분. 거리는 약 5배 길지만, 걸리는 시간은 14배 이상인 것이다. 즉, 서울–부산 7바퀴를 도는 시간에야 하노이에서 호찌민에 닿을 수 있는 셈이다.
베트남 철도의 현실
베트남의 철도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던 1880년대 말부터 건설되었다. 당시엔 ‘식민지의 수송로’로서, 자원과 인력을 북에서 남으로 옮기기 위한 도구였다. 지금도 그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선은 그대로이나, 선로는 낡았고, 전철화도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열차의 속도는 평균적으로 시속 50 km/h 내외 수준이다.
밤기차의 객차는 오래된 스프링 침대와 흔들리는 조명,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창밖으로는 끝없는 논과 강, 마을이 스쳐 지나간다. 그 느림이 어떤 이들에겐 여행의 낭만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아직 ‘불편한 현실’이다.
단선이 만든 ‘기다림의 문화’
이 노선이 단선(single-track)이기에 생기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서로 마주 오는 열차는 중간 지점의 ‘대피선’에서 상대를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 수십 분, 때로는 몇 시간이다. 승객들은 그 기다림을 당연하듯 받아들이며, 간식거리를 나눠 먹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 한 모금에 시간을 보낸다. 이 기다림은 어쩌면 베트남식 ‘인내의 미학’일지도 모른다.
느림이 주는 생각
이처럼 베트남 철도는 여전히 20세기 중반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느림 덕분에, 하노이의 철로 카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 명소’가 되었고,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 나라의 리듬을 눈으로 느끼게 된다.
'빠름이 효율을 만든다면, 느림은 기억을 만든다.'
그 철로마을의 커피 한 잔 속에는, 느리게 흘러도 결국 남과 북을 이어주는 ‘끈질긴 나라의 맥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