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영업자의 회계신고 이야기
외국인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며 마주한 ‘보이지 않는 리스크’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 말에는 단순한 농담 이상의 현실이 담겨 있다. 정부로부터 연락이 없다는 건, 세무나 행정상 특별한 문제도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베트남의 행정 체계는 ‘적극적 관리’보다는 ‘소극적 유지’의 형태로 작동한다.
작게, 그러나 복잡하게
나는 소규모 매장 4~5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매출 규모도 크지 않아서, 현지의 회계 처리를 직접 하기는 어렵고, 세무·회계 업무를 현지 회계사에게 외주로 맡겨왔다.
예전에는 큰 문제 없이 돌아갔다. 월말에 회계 자료를 넘기고, 세금 계산서를 발급받고, 신고만 제때 하면 ‘베트남식 평온함’이 유지됐다.
그러다 어느 날, 세무신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세금계산서 발행이 중단되는 사건이 터졌다. 세무서를 찾아가 벌금을 내고, 법인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법인 대표가 직접 가서 확인시키고 나서야 다시 세금계산서 발급이 가능해졌다.
그 때는 회계처리를 해 주는 직원의 ‘실수겠지’ 하고 넘겼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심각했다.
항상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롯데리아 매니저(현지인)가 내게 달려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현재 롯데리아와 돈치킨, 그리고 우리 법인이 모두 그 회계사에게 위탁을 하여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3분기 회계신고를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신고 마감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회계 담당자가 전화도 안 받고, Zalo 메시지도 씹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세금계산서나 법인 등록 관련 문의를 했을 때도 “호찌민시로 행정구역이 편입되어 지금은 바쁘다”는 답변이 다였다. 그 뒤로 두 달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중간에 몇 번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고, 메시지를 보내면 읽기는 하는데 답변은 없었다. 그래도 세무서나 기타 관공서에서 방문이나 서류 등이 오지 않았기에 '무소식이면 됐다'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리아의 매니저게 내게 제안을 했다. "더이상 그 직원을 믿을 수 없으니, 다른 회계 담당자를 통해 우선 3사분기 세무신고를 마치고 다음 달부터는 업무를 그 쪽으로 이관하자는 것이었다. 동의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매니저가 다시 찾아와 現회계사가 있는 곳을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법인 세무신고관련 서류 원본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없으면 전자문서 상으로 등록된 것과는 달리 실제 세무조사가 나오면 원본과 대조하여 실사를 하고, 그것이 맞지 않으면 과태료 범칙금 등이 과하게(?) 부과된다는 것이었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지난 세무조사에서 수년전 자료를 가지고 트집을 잡으며 수 억동을 세금으로 추징하고 그러면서도 언더머니까지 요구했다는 경험을 전해 들은 바가 있다. 다른 회사 운영자들의 세무관련 부조리에 대해서도 수도 없이 들어온 터라 겁이 털컥 났다.
롱안까지, 3시간의 길
리아 매니저가 “내일 아침 6시에 출발하자”고 했다. 그 회계 담당자가 롱안(Long An)에 산다고 했다. 푸미에서 롱안까지는 편도 세 시간 거리이다.
솔직히 망설였다. '내가 가서 무슨 말을 하지?' '간다고 없던게 생겨나기라도 할까?'라는 의문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번에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으면 사업 운영에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를 만나 물었다.
“왜 두 달 동안 연락이 안 됐나?”
“내일이 신고 마감일인데, 신고는 끝났나?”
돌아온 대답은 단 세 마디였다. “바빴다.” “아직 안 했다.” “내일까지 하겠다.” 그게 전부였다.
결국 이전에 리아 매니저가 제안한 회계 신고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결심하고, 그 자에게는 11월 2일까지 모든 회계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푸미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이게 바로 베트남의 현실이구나'
'떠난 마음은 붙잡을 수 없다'
한 때 성실하다고 믿었던 사람도, 마음이 떠나면 더 이상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매달 비용은 정상적으로 송금받고 있으면서도 신고는 하지 않고, 연락도 끊긴다. 그걸 묵묵히 기다리는 건 결국 사업자 자신이다.
행정 시스템이 느리고, 감시 체계가 미약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이번에도 롯데리아 매니저가 나서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법인은 정지되고, 세금계산서 발급이 중단되고, 매장은 멈췄을 것이다.
감사와 실망이 교차하는 하루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베트남 친구의 도움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같은 베트남 사람의 무책임함에 실망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바로 외국인이 베트남에서 자영업을 하며 겪게 되는 현실이다. 서류보다 관계가 앞서고, 정확함보다 '대충'이 일상인 나라. 그래서 모든 걸 외주로 맡기면, 언젠가 반드시 이런 문제가 생긴다.
결국 배운 건 단순하다.
베트남에서 회계는 외주를 주되, ‘손 놓고 맡기면 안 된다’는 거다. 현실적으로 외주 회계사는 필요하다. 작은 매장을 여러 곳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세무 신고를 직접 챙길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외주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매달 한 번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다.
1. 매월 말, 회계 보고서 원본을 직접 확인한다.
- 부가세 신고, 세금계산서 발급 내역, 매출·매입 장부를 PDF나 엑셀로 받는다.
- 인쇄본을 파일에 정리해 두면, 추후 세무서 확인 시 큰 도움이 된다.
2. 보고서 송부 기한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 '매월 또는 분기별 25일까지 전월 자료 보고'처럼 구체적인 날짜를 정한다.
- 기한을 어기면, 다음 달 비용 일부를 유보하는 조항을 넣는 것도 효과적이다.
3. 현지 담당자(매니저)에게 ‘회계 체크리스트’를 준다.
- 세금계산서 발급 여부, 세무서 신고 마감일, 외주와의 최근 소통 날짜 등 간단한 5~6개 항목을 체크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직원이 먼저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4. Zalo나 이메일로 모든 대화 기록을 남긴다.
- 전화는 잊히지만, 기록은 증거가 된다.
- 문제가 생기면 세무서에 제출 가능한 자료로 쓸 수 있다.
베트남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신고 마감일 알림’, ‘세무서 자동 경고’ 같은 것도 없다. 결국 사업주가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 '무소식은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경고'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외주는 현실이다. 하지만 ‘외주’에 따른 ‘방임’의 결과는 모두 내 책임이다. 베트남에서 살아남으려면, 맡기되, 꼭 ‘손끝’은 쥐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