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장 : 노동의 언어 속에서 피어난 욕과 유머

욕처럼 들린, 삶의 이야기

by 한정호

오늘 저녁, 매장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야, 오늘 씹장 또 나온다며?”

“아, 진짜 씹장만 아니면 일할 만한데…”

순간 멈칫했다. 씹장? 이게 무슨 뜻이지?


처음엔 누굴 욕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말투를 들어보니, 마치 “오늘도 출근해야지” 같은 일상 대화처럼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봤다. 이 ‘씹장’이란 말의 진짜 뜻을.


1. 씹장, 그 고된 일터의 별명

먼저, ‘씹장’은 ‘현장’ 또는 ‘직장’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씨-’나 ‘씹-’ 같은 욕설 접두어를 붙여 감정을 실은 한국식 구어의 전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내일 또 씹장 가야되네…”

이 말에는 욕설보다 더 깊은 한숨과 체념이 담겨 있다.


하지만 ‘씹장’은 단순히 나쁜 말이 아니다. 그 말에는 ‘힘들지만 가야 하는 일터’,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삶의 자리’라는 정서가 배어 있다.

누군가는 그 씹장 덕에 밥을 먹고, 누군가는 그 씹장 때문에 욕을 먹는다.


2. 그런데 씹장이 사람이 된다고?

흥미로운 건, 같은 단어가 또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이번엔 ‘씹장’이 ‘현장소장’을 욕하면서 부르는 말이다.

“씹장 또 내려왔다.”

“씹장 눈치 보지 말고 빨리 해라.”

여기서의 씹장은 더 이상 일터가 아니라 사람이다. 권위와 지시, 그리고 불만의 대상이 되어버린 존재. 원래는 “씹소장”이었겠지만, 입에 붙다 보니 “씹장”으로 줄어든 것이다. 한 음절 줄었을 뿐인데, 감정의 농도는 훨씬 진해졌다.

노동자들에게 ‘씹장’은 '일은 안 하고 말만 많은 관리자'의 대명사이자, 현장 구조를 풍자하는 언어적 무기다.


3. 같은 단어, 다른 온도

결국 ‘씹장’이란 말은 한쪽에선 나 자신이 가야 하는 고된 현장, 다른 한쪽에선 나를 지시하는 권위의 얼굴을 의미한다.

같은 말이지만, 온도가 다르다. 하나는 자기 삶을 비꼬는 자조, 다른 하나는 권력을 비트는 저항이다.


4. 욕이면서 유머가 되는 순간

노동의 현장은 늘 고단하다. 그래서 그 안에서는 욕이 곧 유머가 되고, 유머가 곧 연대의 신호가 된다.

“씹장 간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웃는다. 욕이지만 따뜻하고, 비꼬지만 유머러스한, 그게 바로 한국식 노동언어의 매력이다.


‘씹장’이라는 말엔 단순한 욕설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건 일터의 피로, 관계의 긴장, 그리고 웃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삶의 솔직한 언어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야, 씹장 간다.”

그리고 그 말 속엔, 묘하게 따뜻한 생존의 유머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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