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어서 더 선명하게 보였던, 베트남의 일상 풍경들
베트남에서 생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익숙한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멈춰 세우고,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풍경들.
그 장면들은 단지 문화 차이만으로 설명되기엔, 조금 더 깊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내가 실제로 보고 겪었던 경험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베트남의 일상 8가지를 기록해 본다.
1. 초등학생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
베트남의 거리에서는 가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엔 거의 충격이었다.
'저 애가 지금 담배를 피우는 게 맞나?'
'부모는 어디에 있는 거지?'
베트남에도 미성년자 판매 금지 규정이 있지만, 실제 단속은 거의 없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부모 세대가 담배에 비교적 관대하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며 자란다는 점이다. 일종의 ‘호기심의 조기 충족’ 같은 감각이다. 단속보다 문화, 문화보다 분위기가 아이들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2.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이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고 마시는 풍경
한국인이 보면 '이건 신고감 아닌가?' 싶지만 베트남에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장면이다. 가게 주인은 학생의 나이를 따지기보다 '친구끼리 분위기 즐기러 왔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학생들 역시 술을 ‘금지된 위험 요소’가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조금 빨리 경험해보는 것’ 정도로 여긴다.
사실 우리 매장에 와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소주를 시키는 것을 보고 처음엔 술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가 "괜찮아요. 우리가 마시겠다는데..."라는 말에 내가 더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는 베트남의 술 문화가 가족 중심·분위기 중심이기 때문이다. 술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술자리의 관계, 감정,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
3.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이를 세게 때리는 장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바로 이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가 아이의 얼굴을 귀싸대기로 세게 때리는 모습.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옆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 순간 든 생각은 '저 사람이 진짜 엄마맞나?' '이건 학대 아닌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일부 부모들은 아이의 잘못을 ‘공공의 자리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체벌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지금 고쳐야 한다'는 방식의 공개적 훈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베트남 부모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도시의 젊은 부모들은 점점 체벌을 줄이고 있고 부드러운 양육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 곳곳에서 ‘공개적 체벌’은 쉽게 목격되는 문화적 잔재다.
하기야 우리도 중고등학생때 소위 '미친 개'라 불리는 선생님한테 몽둥이로 엉덩이 뼈가 부서지는 듯하게 맞아본 기억들이 있긴 했다. 아마 우리 딸 아들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4. 오토바이에 4명, 5명이 타고 달리는 장면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사실상 가족의 자동차다. '아빠 앞, 엄마 뒤, 아이 둘'이라는 구조가 일상이고, 아기까지 안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를 위험으로 보기보다 '집 전체가 움직인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대중교통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오토바이는 ‘가족 이동의 기본 틀’이기 때문이다.
5. 동네 전체가 울리는 결혼식·장례식의 대음량
베트남의 행사는 항상 ‘소리’와 함께 움직인다. 폭죽, 스피커, 라이브밴드, 노래방 마이크… 특히 결혼식 날이면 골목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소리가 울린다.
이건 단순한 과시가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소리는 '복을 부르는 방식'이며 시끄러움은 '기쁨이 가득한 증거'다.
한국인의 눈에는 다소 과하게 보이지만, 여기에서는 축제의 본질을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6. 길거리에서 큰 싸움이 나도 금방 끝나는 이유
한 번은 시장 입구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고함치고, 손짓 크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국 같으면 경찰이 올 때까지 난리가 났을 상황이었지만, 베트남에서는 10분도 안 되어 사라졌다.
'그냥 화가 나서 그랬을 뿐'
'이제 끝났어, 됐어'
베트남 사람들은 감정을 즉흥적으로 폭발시키고, 금방 털어내는 문화가 있다. 싸움은 감정 배출이지 관계 파탄이 아니다. 그래서 싸움은 크지만, 오래 남지 않는다.
7. 비 오는 날,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이유
베트남에 살면서 자주 경험한 장면 중 하나가 이거다. 비가 오거나, 비가 갠 직후 길을 걷고 있는데, 오토바이나 차가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흙탕물을 온몸에 튀기고 지나간다. 바지가 젖고, 신발이 젖고, 셔츠까지 얼룩질 때도 있다.
처음엔 너무 놀랐다.
'이 정도면 멈춰서 ‘죄송합니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눈빛이라도…'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놀랍게도 사과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다.
더 놀라운 건, 내가 그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멈춰 서 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별로 신기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비 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듯. 자연스럽게 자기 길을 간다.
왜 이런 일이 일상처럼 받아들여질까?
가. 베트남식 ‘공공의 거리감’ : 베트남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는 정서가 강하다. 한국처럼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라는 즉각적 예의문보다 “그럴 수도 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거리 두기 방식이 일반적이다.
나. 도로 환경이 만든 ‘습관적 체념’ : 비가 오면 물길이 험해지고, 배수가 느려 길 자체가 금방 작은 개천처럼 변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물 튀기기’는 일종의 비 오는 날의 일상 리스크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가 사과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먼저 체념하고 살아가는 구조다.
다. '나도 누군가에게 튈 수 있다'는 상호 인식 : 이건 의외로 중요한 포인트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늘은 내가 피해자지만, 내일은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상대적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물 튀겨도 크게 화내지 않고, 물 튀겨져도 “그럴 수 있다”면서 그냥 넘어간다. 이는 도로 환경과 이동 방식(오토바이 중심)이 만든 일종의 사회적 합의 같은 문화다.
라. 정서적 충돌 회피 : ‘싸움 피하기 문화’ 베트남 사람들은 갈등을 공개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을 싫어한다. 길에서 멈춰서 항의하면 가끔 싸움으로 번질 수 있고, 그걸 피하려는 정서가 강하다. 그래서 애초에 “물 튀겼네 → 그냥 가자”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8. 옆 테이블 사람이 자연스럽게 “같이 먹어요”라고 하는 문화
베트남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식탁을 나누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자 식사하고 있으면 “같이 먹읍시다”라는 말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건네져 온다.
베트남에서는 식탁이 인연의 시작점으로 받아들여진다. 단순한 호의라기보다 ‘함께 있음이 덜 낯설다’라는 공동체적 감각이다.
9. 가게 입구마다 놓인 작은 제단과 향
어디를 가든 식당 앞·가게 앞에 과일, 커피 캔, 향 3개를 올려둔 작은 제단이 있다. 이것은 집을 지키는 작은 신에게 바치는 일상적인 기도이자 ‘오늘 장사 잘 되게 해달라’는 마음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동남아에서 가장 종교적이다. 삶 곳곳에 신앙이 녹아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독특하고 아름답다.
낯설기에 더 잘 보였던 것들
베트남에서 오래 살면서 느끼는 건, 익숙함과 충격 사이에서 내 시선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상식처럼 보이는 장면들도 이곳에서는 나름의 맥락과 이유가 있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그 맥락을 읽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맥락을 읽기 시작하면, 낯선 풍경 속에서도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훨씬 더 깊고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