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해 보였던 장면들 뒤에 숨은 베트남 사회의 작동 방식
베트남에 오래 살다 보면, 처음엔 “이건 문화 충격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장면들을 수도 없이 마주한다. 예의 없어 보이고, 무책임해 보이고, 이해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장면들 대부분은 문화 충격이 아니라 맥락의 부재에서 생긴 오해도 있고, 그들의 속내와 구조를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들이 있다.
1. “죄송합니다”를 거의 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실수에도 사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오토바이가 물을 튀기고 가도, 직원이 실수를 해도, 길에서 부딪혀도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처음엔 이렇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무례하지?”
하지만 베트남 사회에서 사과는 도덕적 예의의 표현이라기보다, 책임을 인정하는 행위에 가깝다.
즉, '사과 = 잘못 인정 = 불리한 위치'로 이동하는 듯한 구조가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가벼운 상황에서는 아예 사과를 생략하고, 심각한 문제일 때만 사과를 선택한다. 의도가 나쁜 게 아니라, 리스크 관리 방식이 다른 것이다.
2. 약속 시간은 ‘참고 사항’에 가깝다
“10시에 간다”고 해놓고 11시에 오는 일. 혹은 아예 안 오는 일.
한국 기준으로 보면 약속 개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베트남의 시간 개념은 관계 중심적이다.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 '갑자기 생긴 가족 일' 또는 '예상 못 한 외부 변수'
이런 것들이 약속 시간보다 우선한다.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미안한 게 아니라, 지금 상황이 더 중요했다는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몇 시에?”보다 “오늘 오긴 오는 거지?”가 더 정확한 질문이다.
3. 공공장소에서의 소음과 무질서
카페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 아이를 공공장소에서 제지하지 않는 모습, 길거리의 혼란스러운 교통 모습들을 보면 무질서 그 자체로 느껴진다. 하지만 베트남은 ‘개인의 영역’ 개념이 매우 느슨한 사회다.
조용해야 한다거나 남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등의 규범이나 기준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강하게 학습되지 않았다. 대신 중요한 건 함께 있는 공간에서의 생존과 적응이다.
'질서보다 유연함', '규칙보다 눈치'라는 개념이 더 강하여, 한국식 '공공 예절'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면 계속 충격만 받게 된다.
4.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피한다
문제가 생기면, 명확한 설명보다 웃으며 넘기거나, 답을 미루거나 심지어는 연락을 끊는 경우도 있다. 책임 회피처럼 보이지만, 실은 갈등 회피 문화에 가깝다.
베트남 사회에서 갈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보다는 '피해야 할 불편한 상태'다.
정면 충돌은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고, 체면을 잃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잠시 덮어두고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대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답답하지만, 그들에겐 관계 유지가 최우선 전략이다.
5. 규칙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규정상 안 되는 일도, 사람에 따라 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되는 일도 사람에 따라 안 된다. 처음엔 '이건 부패 아니야?'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베트남 사회는 여전히 비공식 네트워크 중심으로 작동한다.
'신뢰하는 사람인가?' '아는 사람의 소개인가?' '관계가 쌓였는가?'
이런 심리적 기준이 문서나 규정보다 앞선다. 규칙은 기준일 뿐, 결정은 사람을 보고 내려진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무엇이 맞는가’보다 ‘누가 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베트남에서 겪는 많은 문화 충격은 그 사람들의 문화와 마음가짐을 이해한다면 무조건적인 '틀림'이 아니라 일종의 '다름'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소위 '문화충격'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지만, 그들의 역사, 경제 환경, 가족 중심 구조를 알고 나면, 합리적이거나 동조할 수 있는 순간들도 많다.
문화 충격은 결국 새로운 문화를 만났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해는, 그 충격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