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무엇을 기억하게 만드는가?

국보는 무엇을 기억하게 만드는가?

by 한정호

한국과 베트남의 국보를 비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이르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국보를 어떻게 정하고, 무엇을 기억의 중심에 두고 있을까?'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서 많은 국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 조그마한 국보 하나는 얼마나 할까?' '혹시 산에 등산을 갔다가 흙속에서 저런 유물을 하나라도 건지면 대박나는거 아냐!' 라는 물질주의적(?) 사고.

한국과 베트남의 국보를 대하는 기준을 보면서 한편으론 유산을 '장소이고, 기록이며, 이야기의 집합체'로 인식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전쟁과 파괴의 역사속에 그런 결정을 하게된 점에서 아리는 마음과 애절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만 그렇게 단편 유물에 집중하는 것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세계 주요나라들의 국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살펴 보았다.


사실 이 질문은 단순한 문화재 비교가 아니다. '각 나라가 자신을 어떤 국가로 설명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다. 국보는 단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1. 유럽 : 국보는 ‘문명의 결과물’이다.

유럽 국가들에서 국보에 해당하는 대상들은 대부분 분명하다. 조각, 회화, 성당, 궁전, 도시 전체.

이탈리아의 다비드상,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유럽에서 국보는 거의 항상 완성된 작품이다. '얼마나 정교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류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중요하다. 유럽은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우리는 인류 문명의 기준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유럽의 국보는 ‘이야기’보다 ‘결과’를 보여 준다. 시간의 흐름보다는, 정점에 도달한 형상을 제시한다.


2. 중국 : 국보는 ‘연속된 제국의 증거’

중국의 국보 체계는 또 다르다. 청동기, 옥기, 황실 유물, 능묘, 고문서, 자금성....

중국의 국보는 미적 완성도 이전에 계보와 연속성을 증명한다. 중국은 말한다.

“우리는 끊어지지 않은 문명이다.”


그래서 중국의 국보는 압도적으로 많고, 체계적으로 분류되며, 국가 권력과 역사 서사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국보가 '사유와 미학'을 담고 있다면, 중국의 국보는 '질서와 계승'을 보여 준다.


3. 일본 : 국보는 ‘유지되는 방식’이다

일본의 국보 개념은 매우 독특하다. 불상, 사찰, 다도 도구, 가면, 회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도 국보가 된다. 이른바 ‘인간 국보’다.

일본에서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가다.


그래서 일본은 사찰을 주기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짓는다. 원형을 고집하기보다, 방식과 기술이 이어지는지를 본다. 일본의 국보는 고정된 물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활 양식에 가깝다. 이 점에서 일본은 한국보다 베트남과 더 닮아 있다.


4. 미국 : 국보는 ‘사건과 선택의 기억’이다

미국에는 한국식 의미의 ‘국보’가 거의 없다. 대신 있다면 기념관과 장소다. 독립기념관, 링컨 기념관, 흑인 민권 박물관, 9·11 메모리얼...

미국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장소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보여 준다.”


미국의 국보급 유산은 물건이 아니라 사건이고, 조형물이 아니라 서사다. 천년 된 유물이 없어도 미국의 기억은 충분히 강하다. 왜냐하면 기억의 중심이 ‘형태’가 아니라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과 베트남을 세계 속에 놓으면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한국은 “이 물건은 얼마나 완벽한가”를 묻는 나라다. 베트남은 “이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묻는 나라다.

유럽은 문명의 결과를,

중국은 제국의 연속을,

일본은 전승의 방식을,

미국은 선택의 기억을 중심에 둔다.

그리고 국보는 그 질문에 대한 각 나라의 대답이다. 국보는 우열이 아니라 관점이다. 어느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보는 경쟁 대상이 아니라, 각 사회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가사유상이 한 시대의 사유를 응축한 얼굴이라면, 베트남의 유적과 장소들은 말없이 쌓여 온 시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어떤 나라는 국보를 유리 진열장에 올려두고, 어떤 나라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숨 쉬게 둔다.

국보는 결국 묻고 있다. “당신의 나라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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