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함과 감사함을 가리치는 누나
초등학생 때까지도 나를 목욕시켜 주던 누나가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누나는 물 온도를 맞추고, 수건을 준비하고, 비누 거품을 내며 말없이 나를 돌봤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부끄러움도 없었고, 의문도 없었다. 누나가 곁에 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각자의 삶이 생겼고,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누나는 늘 내 걱정을 한다. 몸은 괜찮은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괜히 마음을 다치고 있는 건 아닌지.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고, 말투엔 늘 조심스러움과 염려가 묻어 있다.
어제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이번 생에서 처음 만난 사이일까?'
혈연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 누나의 돌봄에는 ‘의무’의 느낌이 거의 없다. 부모가 맡긴 역할을 수행한다는 기색도, 누나로서의 책임감만으로 움직이는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몸에 밴 습관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나를 챙긴다.
그래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혹시 누나와 나는 전생에 다른 관계였던 건 아닐까?' '부모와 자식이었을까?' '스승과 제자였을까?' 아니면 '누나가 나를 먼저 잃어본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더 일찍, 더 오래 나를 지켜보는 역할을 맡게 된 건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다. 증명할 수도 없고, 믿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 누나의 태도가 너무 일관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방향의 마음. 그게 가끔은 고맙다기보다 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돌볼 나이가 되었고,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나이도 지났다. 그런데도 누나는 여전히 나를 ‘챙겨야 할 사람’으로 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완전히 떼어내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전생에 어떤 관계였든, 이번 생에서는 이렇게 만날 인연이었던 것 같다. 설명되지 않아도 이어지는 마음, 이유 없이 지속되는 돌봄. 그걸 굳이 해석하려 들기보다, 조용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나와 나는, 이번 생만의 인연은 아닌 것 같다고'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