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지 않았을까?
예전 회사 생활을 떠올려 보면, 나는 윗분을 ‘모시는’ 일에 꽤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회장님이든 내 윗분이든, 누구와 동석하든 흐름을 읽고 빈자리를 채우고, 말 한마디 하나의 무게를 알아채며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가게에 들어온 단체 손님을 보는 순간, 나는 예전의 나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온 분들 중에는 내가 예전에 가졌던 직급보다 높은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썼다. 대화 사이에 끼어든 농담도, 조용히 건네는 귓속말도, 그때그때 반응을 맞추었다. 그렇게 저녁이 무르익어 갈 무렵, 문제는 예상치 못한 ‘후식 라면’에서 터졌다.
라면 4봉지를 8그릇으로 나눠 달라는 주문.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게 하면 국물이 거의 안 나와서 맛이 없어요."
윗 분을 모시는 분이 툭 내뱉었다.
"저 사람들 먹지도 않고 맛도 몰라요."
그런데 라면은 8그릇이 아닌 5그릇만 나왔고, 그가 얼굴을 붉히며 내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사장님, 이런 것 하나 관리도 못해요?"
"사람들이 다 제가 오더 못해서 이렇게 된 줄 알잖아요!!"
그 말투, 눈빛.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나도 예전에 윗분을 모신다고 저랬을까?’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속이 쓰릴까?’
‘그래…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이렇게 굽신거리면서 돈 벌지 말자.’
생각이 뒤엉켜 머릿속에 울렸다.
그런데 가장 높은 분이 먼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과는 연락처를 교환하게 됐다. 겉으로는 분명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고맙다는 인사도 여러 분과 같이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리를 마친 뒤부터 지금까지 마음은 멍하게 가라앉아 있다. 중간 관리자의 눈빛과 말투가 내 안의 오래전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도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굴었을지 모른다는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오늘 겪은 일은 불쾌함과 어떤 씁쓸한 자기 반성을 남겼다. ‘너도 그랬잖아’라고 내게 말하는 내 안의 목소리와,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겠지’라고 나를 감싸는 또 다른 마음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삶은 가끔 이렇게, 누군가의 한마디를 통해 그동안 외면하고 지내온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