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까지 나태해질 수 있을까?

연말, 나를 놓아버린 며칠에 대하여

by 한정호

연말이다. 몸이 먼저 쉬자고 한다. 마음은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몸은 이미 휴식 쪽으로 기울어 있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유튜브에 몸을 맡긴다. 의미 없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고, 또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잠깐 밖으로 나간다.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어 모아 불을 지핀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바라보며 또 한참을 넋 놓고 서 있다. 생각은 멈추고, 시간만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쓰지 않은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까지 나태해질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마치 나 자신과 실험을 하듯, 해야 할 일을 일부러 밀어두고 하고 싶은 대로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갑자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미뤄둔 생각, 정리되지 않은 계획, 손도 대지 않은 글감들. 도망치듯 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쉬는 척하며, 사실은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를 정했다. 다시 글을 쓰는 것. 대단한 결심도 아니다. 거창한 계획도 아니다. 그냥, 오늘은 무조건 글 하나를 쓰자고 마음먹었다. 이건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다. 조회수를 위한 것도 아니고, 연말을 정리하기 위한 의식 같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나를 붙잡기 위한 행동이다.


아무도 말리지 않으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풀어진다. 그리고 풀어진 자신을 다시 잡아당기는 일은

늘 귀찮고, 불편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오늘은 그 역할을 내가 맡기로 했다.


얼마까지 나태해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며칠간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 아마 끝이 없을 것같다. 그래서 더더욱,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글 한 편을 쓰는 것으로, 다시 나를 부르는 신호를 하나 켜본다.

연말이다. 쉬어도 된다. 하지만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말자. 적어도, 글을 쓰는 나만큼은 다시 돌아와 앉혀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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