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직함으로 남은 시간들, 그리고 이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by 한정호

사람을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면, 의외로 먼저 느껴지는 건 얼굴보다 호칭이다.

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아직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 누구의 아빠도, 누구의 대표도 아닌 그냥 그 시절의 이름이다. 그래서 동창이 편하다. 설명할 게 없고, 역할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때의 관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백화점 매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늘 ‘한 팀장’이다.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그 시절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어도,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팀장이었다. 그 호칭 속에는 그때의 업무 방식, 책임의 무게, 함께 보냈던 바쁜 날들이 함께 묻어 있다.

베트남에서 대표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그들은 나를 ‘한 소장’이라고 부른다. 그 호칭은 직함이기 이전에,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낯선 나라에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리던 모습, 현지에서 부딪히며 버텼던 시간까지 함께 담겨 있다.

마지막까지 함께 다니던 회사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여전히 ‘이사님’이다. 지금은 그 직함을 내려놓았지만, 그들에게 나는 그 시절의 역할과 태도로 남아 있다. 호칭은 현재를 설명하지 않지만, 과거를 정확하게 붙잡고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나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그 호칭들은 모두 지금의 나를 부르는 말은 아니다. 대신, 함께했던 시절의 나를 부른다. 관계가 바뀌면 호칭이 바뀌고, 호칭은 그때의 역할과 시간을 붙잡아 둔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가 나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를 들으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호칭 속에 남아 있는 시간들이, 내가 걸어온 삶의 구간들을 조용히 증명해 준다.


한 해를 정리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사람들마다 다른 호칭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때처럼,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그냥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직함도, 역할도 떼어낸 채, 그저 그 시절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관계가 바뀌면 호칭이 바뀌고, 호칭은 그때의 역할과 시간을 붙잡아 둔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그 많은 호칭들 너머에서 결국 이름 하나만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느 직함의 누구’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면, 올 한 해도 잘 살아온 것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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