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한 번, 그리고 사람들 덕분에 이어진 인생
오늘은 정말 죽다가 살아났다. 말 그대로다. 과장이 아니다. 일생에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새벽 5시. 보스가 가슴 위로 올라와 밥을 달라며 칭얼댄 덕분에 눈을 떴다. 놀라울 만큼 조용하게 한 해의 마지막을 보냈기에, 새해 첫날만큼은 뭔가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에게 밥을 주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어젯밤 12시 전, 거리 어딘가에서 폭죽이 터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 작년에 폭죽 행사가 열렸던 시립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12시는 지나버렸고, 그 이후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5분쯤 더 앞으로 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길가 노점상들은 손님도 없이 벌써 정리를 하고 있었고, 연말연시 특유의 들뜬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래서였을까. 새해 아침만큼은 더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산 위에 있는 사찰을 찾았다. 법당에서 아침 봉양을 드리는 스님의 모습, 새해 아침의 정기를 담은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겸 메시지도 보냈다. 이른 아침 분보 후에와 커피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해보려는 계획도 세웠다.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 또 하나의 사찰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엔 항상 문이 닫혀 있던 곳인데, 오늘따라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오. 새해를 맞아 정말 행운이 오려나 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은 곧 들었다. 스님이나 비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잔디를 깎는 아저씨 한 분, 청소 중인 비구 한 분만 눈에 띄었다. ‘그럼 어때. 사진 찍기도 좋고,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으니 더 좋지.’ 그렇게 사찰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2층 본당에 들어가려 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손등에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말벌이 손등에 앉아 있었다. 손톱으로 밀어내려 하자, 녀석은 잽사게 날아가 버렸다. 손등에는 주사 맞은 것보다 훨씬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 또 며칠 붓고 가렵겠구나.’ 그 정도 생각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몸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상한데…’ 조금 더 움직이기보다는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쉬었다가, 떡국을 준비한다던 김 사장 식당에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그 짧은 거리조차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집에 들어오며 보스에게 말했다. “아빠 몸이 이상해. 잠깐 누웠다가 씻고 같이 놀자.” 말벌이니까, 다른 벌보다 독하긴 하겠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속이 이상해졌다. 물을 마시려 했는데 한 모금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반 이상을 바닥에 뱉어냈다. 목 바로 아래, 약을 삼키다 걸린 것처럼 뭔가가 끼어 있는 느낌이었다.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창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골라봤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마치 누군가 목을 조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 혼자 숨 못 쉬면… 죽는 건가?’
‘화생방으로 죽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제때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봐도 어쩌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힘을 내, 김 사장 식당으로 향했다. 길에서 쓰러지더라도, 누군가 보기만 하면 조치가 더 빠를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식당에 도착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다만 불은 켜져 있었고, 문도 열렸다. 옆 커피숍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다행이다.’
김 사장은 식재료를 사러 갔을 거고, 곧 돌아올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잠시 후 김 사장이 들어왔다. “이렇게 일찍 떡국 드시러 오셨어요!” 하지만 나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달라고 왔어요.” 김 사장은 내 얼굴을 다시 보더니 급히 다가와 상황을 들었다. 놀란 표정이었다. 약이라도 먼저 먹어보자며 약을 사다 줬지만,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약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옆 커피숍 주인 차로 병원에 가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게 옆집 사람이 불려왔는데 나를 보더니, 몇 군데 쏘였는지 묻더니 한 군데라고 하자, 괜찮을 거라며 저녁이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조금 괜찮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밖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데, 김 사장이 다시 나와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말벌에 쏘였을 때 증상과 대처법.’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너무도 같았다. 그제야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괜찮아 보여도, 아까처럼 갑자기 심해지면 어쩌나 싶었다. 그렇게 바리아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에게 설명을 하자 링거와 주사바늘이 다시 내 몸을 찔렀다. 말벌 한 번 맞고, 더 크고 아픈 주사를 또 맞은 셈이다. 주사를 맞다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두세 시간은 지난 듯했다. 그제야 알았다.
‘아… 이게 죽다가 살아났다는 거구나.’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병원 내부 사진 몇 장 찍어둘 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살아 돌아온 듯한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응급실 입구 사진 한 장을 찍고, 다시 차에 실려 식당으로 돌아왔다. 식당에는 다른 지인이 떡국을 먹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말했다. “저도 떡국 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물도 한 컵을 쭉 마실 수 있을 만큼 편해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2시를 훌쩍 넘겼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밤 8시. 새해 첫날이 그렇게 사라져 있었다. 벌에 쏘인 손을 보니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낀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 매장에 가서 치킨을 사 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아침에 김 사장 식당으로 가지 않았다면?’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참았더라면?’
끔찍하다. 병원에서 그렇게 주사를 맞고 왔는데도 손이 이 정도면, 오늘은 정말 죽다가 살아난 게 맞다. 새롭게 얻은 목숨이다. 조금 더 이쁘게, 조금 더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rm렇게 잤는데도 또 졸리다.
오늘은 새로운 한 해, 새로운 인생을 위해 충전하는 날로 하자. 마음 편히, 더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