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 사람들
베트남에서 살다 보면, 한국 사람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막히는 지점이 있다. "왜 말을 안 하고, 왜 직접 말하지 않느냐?" “왜 괜찮다고 해놓고, 나중에 다시 이전의 일을 꺼내서 서운해 하거나 질책을 하는걸까?”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중심에는 늘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눈치’다.
1. 눈치는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한국 사회에서 눈치는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 '비굴하다', '솔직하지 않다', '돌려 말한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눈치는 비겁함이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발달한 기술에 가깝다.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 말을 지금 해도 되는지, 말 한마디가 관계를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는지. 한국인은 말을 꺼내기 전에 이 과정을 먼저 거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건 솔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솔직함이 곧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한국인은 말을 줄이고, 맥락을 읽는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보다 상황과 맥락이다. 누가 말했는지, 어떤 자리인지, 그 말 앞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가 의미를 결정한다. 같은 말이라도 회의실에서 한 말과 회식 자리에서 한 말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한국인은 말을 하기보다 먼저 표정과 분위기, 침묵을 본다.
이 모습은 답답해 보일 수 있다. '왜 돌려 말하느냐!'고, '왜 분명히 말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눈치는 무례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관계를 불필요하게 상처내지 않으려는 방어선이기도 하다.
3. 눈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완충 장치다
한국 사회에서는 관계가 끊어지는 일을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을 때,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는 최대한 마찰을 줄이면서 흘려보내려 한다. 눈치는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완충 장치다. 지금 말하면 상처가 될 것 같을 때, 지금 요구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 같을 때, 한국인은 말을 삼킨다. 이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그래도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선택일 때가 많다.
4. 눈치를 못 읽으면 생기는 오해
눈치 문화는 종종 오해를 낳는다. 베트남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껴질 수 있다. '괜찮다더니 왜 나중에 문제가 되지?' '그 땐 말 안 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서운해하지?' 이런 질문이 나온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분위기상 알았을 줄 알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오해가 시작된다. 말을 기준으로 관계를 판단하는 문화와, 맥락을 기준으로 관계를 판단하는 문화가 부딪히는 지점이다.
5. '눈치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조차 말한다. 눈치 문화가 피곤하고, 답답하다고. 그럼에도 눈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위계가 남아 있고, 집단 속 관계가 중요하며,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한, 눈치는 계속 작동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눈치를 이해하면, 한국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상처는 줄일 수 있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고, 침묵이 곧 부정이나 거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한국인의 눈치는 답답한 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갈등을 줄이고, 관계를 가능한 오래 가져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눈치를 요구하는 사회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눈치 덕분에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말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 사람들. 그것이 한국 사회가 관계를 다뤄온 하나의 방식이다. 이 모순된 감정 속에서, 한국인은 오늘도 말을 삼키고 표정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