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복권, 그리고 일로 남은 생계
베트남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때로는 할머니가 손주를 오토바이에 태운 채 카페 테이블 사이로 들어와 복권을 내민다. 노점 앞에서, 길가 식당에서, 혹은 사람들이 모여 앉은 플라스틱 의자 사이에서 조용히 복권 한 장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처음 보면 자연스럽게 ‘앵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면, 단순한 구걸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다르다. 이들은 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정해진 가격의 복권을 내밀 뿐이고, 사든 말든 바로 물러선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표정도 과하지 않다. 마치 오래된 일상의 일부처럼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질문이 생긴다.
'이 사람들은 복권을 어디서 받아오는 걸까?'
'복권을 사서 이익을 남기고 다시 파는 걸까?' 아니면
'정부가 취약계층에게 복권을 나눠줘 생계를 지원하는 방식일까?'...
한국에서 복권은 편의점에서 전산으로 구매하는 상품이다. 개인이 들고 다니며 파는 장면은 거의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베트남의 이 풍경은 낯설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예외적인 풍경이 아니라, 베트남 사회에서 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구조다.
베트남의 전통 복권은 국가가 관리한다. 각 지방정부 산하 복권회사가 종이 복권을 발행하고, 수익의 상당 부분은 복지, 교육, 지역 인프라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 복권은 지금도 실물 종이 형태로 유통되며, 거리 판매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종이 복권을 판매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노인, 장애인, 여성 가장 같은 취약계층이다. 이들은 복권을 ‘사서 되파는 상인’이라기보다, 복권을 위탁받아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에 가깝다.
베트남의 복권 종류가 유독 많은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인 종이 복권 외에도, 숫자를 직접 고르는 전산 복권, 즉석 당첨 방식, 스포츠 경기 결과를 맞히는 형태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도 “복권이 너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복권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합법적으로 접근 가능한 거의 유일한 ‘기회’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복권은 도박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큰돈을 벌겠다는 확신보다는, 언젠가 한 번쯤은 인생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특히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은 사회 구조 속에서, 복권은 여전히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로 인식된다. 베트남 사람들이 복권이나 도박에 심취해 있다는 말의 이면에는, 그런 현실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흥미로운 건, 복권을 권하는 사람보다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베트남 사람들은 복권을 사기도 하고, 사지 않기도 아주 자연스럽다. 필요하면 한 장을 사고, 아니면 미소 한 번으로 조용히 거절한다. 미안해하지도 않고, 판매자 역시 서운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에는 긴장도, 눈치도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복권 판매가 ‘부탁’이 아니라 ‘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복권을 사주는 행위는 '동정이 아니라 선택'이고, 거절은 무례가 아니다. 상대의 생계를 존중하되, 개인의 선택을 침범하지 않는 선이 분명히 그어져 있다. 그래서 이 짧은 거래는 감정 없이, 그러나 차갑지도 않게 끝난다. 그 담담함이 이 풍경을 오래 지속시킨다.
그래서 베트남 거리에서 만나는 복권 한 장은 단순한 도박 상품이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가 선택한 복권 운영 방식과, 복지의 한계, 그리고 취약계층을 흡수하는 현실적인 타협이 함께 접혀 있다. 다음에 거리에서 복권을 내미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장면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한 장의 복권이, 베트남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방식의 단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