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느끼는 남부와 북부의 미묘한 거리감
호치민은 돈이 많은 도시다. 그런데 왜 방향감각은 늘 다른 곳을 향할까? 베트남에서 조금만 오래 살다 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통일 이후엔 사실 남부가 북부를 먹여 살린다.”
“호치민이 베트남 경제의 심장이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긴 어렵다. 숫자를 보면 더 그렇다. 호치민은 베트남에서 늘 경제 규모 1~2위를 다투는 도시다. 2024년 기준 호치민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약 1,780조 동, 하노이는 약 1,430조 동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1인당 수치도 비슷하다. 호치민의 1인당 GRDP는 약 1억 7천만 동, 하노이는 약 1억 6천만 동 정도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런 결론이 자연스럽다.
돈은 남부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주도권도 남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호치민에서 살다 보면, 이 공식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한다. 돈은 여기서 도는데, 결정은 늘 다른 데서 내려오는 느낌. 호치민에서 사업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행정과 얽히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호치민에서 정해질 일 아닌가?”
“왜 방향은 항상 다른 쪽에서 잡히는 걸까?”
돈은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데, 규칙은 이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지 않다. 이건 불만이라기보다는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쌓이는 체감에 가깝다.
어느 순간 떠오른 다른 질문,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질문을 잘못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호치민은 애초에 남부만의 도시였던 적이 거의 없다.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흘러들어 오는 도시였다. 호치민은 ‘이주로 성장한 도시’다. 통계로 봐도 이건 분명하다. 베트남에서 내부 이주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오랫동안 호치민을 포함한 남동부 지역이었다.
2014~2019년 사이 베트남 국내에서 거주지를 옮긴 사람은 약 640만 명. 2019~2024년에는 그 수가 줄었지만, 그래도 약 380만 명에 달한다. 그 중 상당수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호치민과 인근 공업지대로 이동했다. 반대로 북중부나 메콩델타 지역은 대표적인 인구 순유출 지역으로 분류된다. 즉, 호치민의 경제 성장은 ‘남부 사람들만의 성과’라기보다 전국의 이동이 만들어 낸 결과에 가깝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규칙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호치민에서 조직이나 사업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중요한 결정을 다루는 사람들, 복잡한 제도와 행정을 정리하는 사람들, 중앙과의 연결 고리를 쥐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꼭 남부 출신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체계와 규칙에 익숙한 쪽이 자연스럽게 앞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다. 돈은 호치민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돈을 어떻게 움직일지는 규칙을 잘 아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이건 누가 누구를 제어해서 생긴 결과라기보다, 도시 구조가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깝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남부가 북부를 제어한다'는 말은 어딘가 설명이 부족하다. 호치민은 분명 베트남의 지갑이다. 하지만 그 지갑 안에는 이미 북부와 중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함께 들어 있다. 이 도시를 남부와 북부로 단순히 나누는 순간, 현실의 중요한 부분이 빠져버린다. 호치민은 전장이 아니라 무대에 가깝다. 이 도시에서 중요한 건 출신지가 아니라, 이 도시의 규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지, 구조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이다.
호치민은 누군가를 지배하는 도시라기보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를 찾는 무대에 가깝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누가 누구를 제어하느냐'보다 '누가 이 구조에 더 잘 적응했느냐'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돈이 많은 도시가 항상 방향을 쥐는 건 아니다. 지갑이 커졌다고 해서 운전대를 함께 잡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호치민에서 느끼는 이 묘한 거리감은, 아마도 그 사실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는 장면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