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은 사과를 자주, 그리고 복잡하게 말하나?
베트남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인의 ‘사과’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한다.
“왜 한국 사람들은 잘못이 크지 않아도 자꾸 사과하나요?”
“왜 한 번 사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설명을 덧붙이나요?”
베트남의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사과는 종종 과해 보인다.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길고, 때로는 오히려 진심이 흐려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사과는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다.
1. 한국에서 사과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한국에서 사과는 잘못의 크기를 따지는 행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관계가 어긋났는지, 상대의 마음이 상했는지, 앞으로의 관계가 불편해질 가능성이 있는지. 이 모든 것을 함께 점검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인은 사실관계보다 먼저 사과한다.
“미안해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이 말들은 잘못을 인정한다기보다, 관계의 균열을 먼저 봉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2. 한국인의 사과가 길어지는 이유
한국인의 사과는 대개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과 → 설명 → 해명 → 재사과'의 구조를 반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과만 던지고 설명을 생략하면,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상대의 불편함을 가볍게 여겼다'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사과를 하면서도 계속 말한다. 그 말들은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상대를 납득시키고 안심시키려는 과정이다.
3. 베트남에서 사과는 ‘책임 인정’에 가깝다
베트남 사회에서 사과는 훨씬 무겁다. 사과는, 곧 책임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불리한 위치로 이동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정말 명확한 잘못이 아닐 경우, 사과를 쉽게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정리하거나, 말없이 넘어가거나, 상황 자체를 흐르게 둔다.
이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잦은 사과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4. 한국인의 사과는 ‘약함’이 아니라 ‘불안함’에 가깝다
한국인의 사과를 겸손이나 예의로만 보면, 중요한 지점을 놓치게 된다. 그 바탕에는 관계가 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상대가 마음속으로 쌓아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사과를 미리 한다. 충돌이 커지기 전에, 감정이 굳어지기 전에.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관리하는 언어에 가깝다.
5. 같은 사과, 다른 해석
베트남 사람에게, 한국인의 사과는 과하고 복잡해 보일 수 있다.
한국인에게, 베트남인의 사과 부재는 차갑고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사과가 작동하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직장 문화에서 유난히 많은 오해를 낳는 장면, ‘회식’을 이야기하려 한다. 왜 한국에서는 술자리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관계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자리로 작동하는지, 그 숨은 비밀을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