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 회식의 숨은 의미

술자리가 관계의 수단인 이유

by 한정호

한국에서 직장 회식은 단순히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자리가 아니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면서도 업무가 아닌 자리, 공식적인 자리이면서도 공식이 아닌 공간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회식은 늘 애매하고, 그래서 더 많은 오해를 낳는다.


1. 한국에서 회식은 ‘밥자리’가 아니라 ‘관계 확인의 자리’

한국에서 회식은 일을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사람이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인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는가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래서 회식에는 묘한 규칙들이 따라붙는다. 대표나 상사가 오면 빠지기 어렵고, 특별한 이유 없이 먼저 일어나기 어렵고,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오래 기억된다

즉, 한국인에게 회식은 ‘친목’이 아니라 '소속'의 언어다.


2. “집에 가서 밥 먹어야 해서요”가 왜 문제처럼 느껴질까?

베트남에서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다. '가족과의 약속', 개인의 일정이 우선이다. 하지만 한국 조직에서 대표이사가 와서 회식을 하자는데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 “선약이 있다”며 절반이 빠져버리면 공기는 급격히 달라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이 ‘오늘은 안 된다’가 아니라 ‘이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식은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체면을 외면하면, 의도와 상관없이 관계의 균열로 읽힌다.


3. 말단 직원이 다리를 꼬고, 담배를 무는 장면이 불편한 이유

이 장면 역시 문화 차이에서 온다. 베트남에서는 회식 자리는 비교적 평등하다. 윗사람이 있어도 자세나 행동에 큰 제약이 없다.

하지만 한국 회식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작동한다. 부하 직원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고, 담배를 물고 있으면 그 행동 자체보다 '이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문제로 읽힌다. 한국식 회식에서 중요한 건, '편함'이 아니라 ‘상황 인식’이다.


4. 한국인이 회식을 힘들어하면서도 포기 못 하는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 스스로도 회식을 싫어한다. 피곤하고, 형식적이고, 눈치 보느라 불편하다. 그런데도 회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회식이 관계의 마찰을 줄이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업무 중에는 못 했던 말, 쌓였던 감정, 애매한 거리감이 술자리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은 회식을 ‘의무’로 욕하면서도 ‘완전히 없애자’고 말하지는 못한다.


5. 같은 술자리, 전혀 다른 해석

베트남 사람에게 회식은 선택 가능한 사교의 한 형태다.

반면, 한국인에게 회식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그래서 한쪽은 '왜 이렇게 강요하나'라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왜 이렇게 무심하나'라고 느낀다.


갈등은 의도에서 생기지 않는다. 상황인식의 차이에서 생긴다.


다음 편에서는 '왜 한국인은 직장에서 감정을 바로바로 직접 말하지 않고, 뒤늦게 폭발시키는지'를 ‘침묵과 뒷말의 구조’로 이어서 풀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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