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은 직장에서 감정을 바로 말하지 않고, 뒤늦게 폭발시키는가?
한국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회의 중에는 아무 말도 없던 사람이, 회의가 끝난 뒤에야 불만을 쏟아낸다. 그때는 웃고 있었는데, 며칠 뒤 갑자기 거리감이 생기고, 나중에는 “사실 그때 많이 불편했다”는 말이 나온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 모습이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것이다.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을까?'
'왜 문제를 키워서 말할까?'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현상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에 가깝다.
1. 한국 직장에서 ‘바로 말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위험이다
한국 직장에서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는 솔직함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상대의 체면을 깎는 행동,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 조직의 흐름을 깨는 행동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위계가 분명한 조직일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진다.
그래서 한국인은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에도 말을 고른다. 지금 말해도 되는지, 이 자리가 맞는지, 이 말이 나중에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오지는 않을지. 그 고민 끝에 많은 감정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침묵으로 남는다.
2.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보류’다
한국 직장에서의 침묵은 대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말하지 않겠다'는 보류에 가깝다. 지금 말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 같을 때,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올 것 같을 때, 조직 안에서 자신만 튀어 보일 것 같을 때. 한국인은 말을 미룬다.
그 침묵은 사라진 감정이 아니라, 쌓이고 있는 감정이다.
3. 말하지 않은 감정은 다른 경로를 찾는다
문제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다른 통로로 이동한다. 동료에게 흘러가고, 술자리에서 나오고, 회의 후 복도에서 퍼지고, 메신저 뒷대화로 이어진다.
이른바 ‘뒷담화’이다. 한국 사회에서 뒷담화는 단순한 험담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비공식적으로 조정하는 우회로에 가깝다.
4. 왜 뒤늦게 폭발하는가?
침묵은 언젠가 끝난다. 참아온 감정이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작은 계기로도 폭발한다. 그때 나오는 말은 현재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과거의 서운함, 지나간 장면들,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래서 한국인의 분노는 갑작스럽고, 과해 보인다. 하지만 그 폭발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연된 표현에 가깝다.
5. 이 구조는 왜 쉽게 바뀌지 않는가?
많은 한국인들 역시 이 구조가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위계가 남아 있고, 관계가 중요하며, 한 조직 안에서 오래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은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감정 표현은 항상 계산된다.
6. 다른 문화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베트남을 비롯한, 보다 직설적인 문화권에서는 이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나?'
'말하지 않았으니 괜찮은 줄 알았다.'
이 말들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았던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고, 웃음은 만족이 아니다. 한국 직장에서의 침묵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 방편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말은 더 늦게, 더 크게 돌아온다. 이것이 한국 직장에서 ‘침묵과 뒷담화’가 반복되는 구조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자주 말하는 ‘예의’와 ‘배려’가, 어느 순간부터 부담과 눈치가 되는지,
그리고 왜 한국인은 격식과 체면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지를 ‘관계의 경계선’이라는 관점에서 이어서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