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많은 나라가, 치아가 건강한 나라인 건 아니다

프랑스 의학보다 더 중요한,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습관 이야기

by 한정호

베트남에는 유난히 치과가 많다. 도시를 걷다 보면 블록마다 하나씩 치과 간판이 보이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고급 치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이전에 '베트남에 특화되어 발달한 의학(Ⅰ)-치과' 라는 글에서, 이 현상을 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도입된 의학 체계와 제도적 영향을 중심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군의관 시스템, 공중보건 개념, 서구식 치과 교육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설명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난 뒤에도 계속 마음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치과 치료를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치과가 발달했다는 설명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일 뿐,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베트남에 치과가 많은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의 치아와 잇몸이 구조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생활 환경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1. 단맛에 관대한 사회

베트남 식문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단맛'이다.

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 당도가 높은 길거리 디저트, 간식처럼 자주 마시는 단 음료들. 문제는 단맛 그 자체보다 빈도다. 베트남에서는 단 음식을 ‘식사 후 가끔’이 아니라, 하루 일과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섭취한다.

치아 입장에서 보면, 산성 환경 + 당분 노출 시간이 길어지는 구조다. 이건 충치뿐 아니라 잇몸 염증에도 불리하다. 과일은 몸에 좋지만, 치아에 늘 좋은 건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과일을 정말 많이 먹는다. 아침에도, 점심 후에도, 저녁에도 과일이 올라온다. 문제는 대부분의 열대 과일이 당도가 높고, 산성이며 식후 바로 양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일이 나쁜 게 아니라, 치아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일 섭취 빈도가 높다는 게 문제다.


2. ‘아프면 간다’는 의료 인식

베트남에서 치과는 예방의 공간이 아니라, 통증이 생겼을 때 가는 곳에 가깝다. 스케일링을 정기적으로 받는 문화는 약하고, 잇몸 출혈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염증은 오랫동안 조용히 진행되고, 통증이 느껴질 즈음에는 이미 발치나 보철이 필요한 단계가 된다. 치아가 약해서라기보다 관리 개념이 뒤늦게 개입하는 구조다.


3. 먹는 문화, 씹는 문화의 차이

베트남 음식은 대체로 부드럽고 잘게 썰어져 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씹는 자극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잇몸과 치조골은 ‘쓰일수록 유지되는 조직’인데, 부드러운 음식 위주의 식단은 잇몸을 점점 약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흡연, 음주, 카페인 소비까지 더해지면, 잇몸 환경은 더 빠르게 나빠진다. 그래서 치과는 발달했다


이 모든 조건이 겹치면 결과는 하나다. 충치, 치주염, 보철, 임플란트. 치과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요가 많아지면, 그 분야는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베트남의 치과가 발달한 이유는 프랑스 의학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4. 한국인에게 익숙한 ‘잇몸약’이 낯선 이유

한국에서는, 잇몸을 관리하기 위해 약을 먹는 개념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인사돌, 이가탄 같은 약들이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잇몸 문제는 약으로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치과에서 해결하는 문제로 인식된다. 그래서 치과는 많지만, 잇몸 관리용 의약품 문화는 거의 없다.

치과가 많다는 건, 치아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베트남에 치과가 많다는 사실은, 의료 수준이 낮다는 증거도 아니고, 반대로 건강하다는 증거도 아니다. 그건 단지 생활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치과다.


5.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에게도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역시 이 생활 습관에 조용히 적응해 간다. 연유 커피에 익숙해지고, 단 음료를 자주 마시고, 과일을 자주 먹으면서도 양치와 잇몸 관리에는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문제는 그 변화가 아프게가 아니라,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잇몸은 소리 없이 약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버티다 발치하고 임플란트'라는 선택지가 자연스러워진다.

베트남에서 치과가 많다는 사실은 저가로 치료받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리 관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과 몸까지 무방비로 맡기는 것은 다르다. 특히 치아와 잇몸은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베트남의 좋은 점만큼이나, 이런 생활 습관의 그림자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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