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설(Tết) 전에 무얼 준비하고 있을까?

한 해를 다시 시작해도 될 자격을 얻기 위한 노력

by 한정호

베트남 설(Tết)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거래업체들로부터 연락이 부쩍 많아졌다.

“형, 이번 주 안에 결제 좀 가능해요?”

“원래 날짜보다 조금만 먼저 주시면 안 돼요?”

처음엔 그냥 월말 마감인가 싶었는데, 몇 년 겪다 보니 안다. 이건 단순한 자금 회전 문제가 아니라, Tet 준비 신호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설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버튼 같은 날이다.

그래서 설이 다가오면, 돈부터 정리한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새해가 열린다고 믿는다.

한국에서 설이 '가족 중심의 명절'이라면, 베트남의 설은 '삶 전체를 정리하는 의식'에 가깝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설을 맞이하기 전에, 단순히 음식만 준비하지 않는다. 집, 마음, 인간관계, 돈, 빚, 운까지 전부 정리한다.


1. 집을 청소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정리한다

설 전 1~2주가 되면, 베트남 사람들은 집을 미친 듯이 청소하기 시작한다. 가구를 전부 옮기고 벽, 천장, 선풍기, 에어컨까지 닦고 커튼, 이불, 매트리스 전부 세탁하고 안 쓰는 물건은 과감히 버린다. 이건 단순한 청소가 아니다. '지난 해의 나쁜 기운을 털어내는 의식'이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설 당일에 청소를 하면 안 된다. 복을 쓸어내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 전에 다 치워야 한다. 집이 깨끗하지 않으면, 새해 운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 빚을 갚고, 관계를 정리한다

베트남에서 설 전에 가장 민감한 주제는 돈이다. 빌린 돈 있으면 설 전에 무조건 갚으려 한다. 직원 월급, 거래처 정산, 가족 간 돈 문제 전부 정리한다. '새해에 빚을 지고 넘어가면, 1년 내내 빚진 인생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돈 빌려준 사람은 연락이 잦아지고 돈 빌린 사람은 갑자기 잠수가 늘어난다.

설은 인간관계 리셋 버튼이기도 하다. 서운했던 일, 오해, 갈등도 웬만하면 설 전에 풀려고 한다. 설을 맞이한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까지 정리한 상태로 새해를 맞는다는 뜻이다.


3. 조상에게 먼저 새해 인사를 드린다

베트남 설의 핵심은 조상 제사다. 설 전날과 설 당일, 거의 모든 집에는 제단이 차려진다. 과일 5종 (오행 상징), 닭, 돼지고기, 찹쌀 음식, 술, 차, 향 그리고 고인의 사진. 중요한 건, 살아 있는 가족보다 조상이 먼저다.

새해 인사는, 조상에게 먼저 드리고 부모님, 어르신 그 다음 차례가 아이들이다. 이 구조는 굉장히 유교적이면서도, 베트남식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조상 덕분'이라는 인식이 아주 강하다.


4. 꽃과 나무는 ‘운’을 사는 행위다

설 전 베트남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꽃 시장이다. 지역별 상징 꽃도 다르다. 남부에서는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노란 매화 (Hoa Mai)가 주로 사용되고, 북부에서는 사랑과 새 출발을 의미하는 복숭아꽃 (Hoa Đào)이 주를 이룬다. 또한 자손 번창, 장사 운을 상징하는 금귤나무 (Quất)도 한 몫을 담당한다.

이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운을 돈 주고 사는 행위다. 꽃이 잘 피면, 장사도 잘 되고, 자식 운도 좋으며,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설 전 꽃값은 말도 안 되게 비싸진다. 그래도 다들 산다. 운은 아끼는 게 아니니까.


5. 새 옷을 입는 건, 새 인생을 입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설에 새 옷을 꼭 입는다. 아이든 어른이든, 형편이 어떻든 무조건 하나는 산다. 이건 패션이 아니라 상징이다. 낡은 옷은 지난 인생을 의미하고, 새 옷은 새 인생을 말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설날 아침에 새 옷을 입히고, 어른들께 세배하고 빨간 봉투(리시, 한국의 세뱃돈)도 건넨다.


6. 설 준비의 진짜 의미

베트남 사람들이 설 전에 준비하는 건 사실 이것이다. 집 청소를 하면서 과거 정리하고, 빚을 청산하면서 책임을 정리하는 것. 조상에 제사를 지내면서 뿌리를 확인한다. 꽃을 구입하면서 한 해의 운에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새 옷을 입고 정체성을 리셋하는 것이다.


결국 설은 휴일이 아니라, 인생 점검일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설은 늘 무겁다. 기대도 크고, 부담도 크고, 감정도 많다. 베트남에서 설은 쉼이 아니라, '한 해를 다시 시작해도 될 자격을 얻는 날'에 가깝다.


한국의 설이 가족에게 돌아오는 날이라면, 베트남의 설은 자기 인생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한국에서도 설이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엇 때문일까? 내 기억엔 어렸을 때 트럭같은 차에 친지들이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외할아버지 산소로 향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 가장 큰 어르신인 큰 외삼촌도 떠나셨고 이젠 설이 되어도 다들 모이시지도 못한다. 어르신들이야 연세가 80을 훌쩍 넘기셨으니 그렇지만 우리 세대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아버님, 어머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죄송하면서도 그렇다. 세상이 그렇게 바뀐게. 나도 그렇게 바뀐게.

그래서 베트남 지금 모습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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