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 특히 북부는 왜 원색을 좋아할까?

색으로 읽는 베트남 북부의 감각과 기억

by 한정호

하노이를 걷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색들이 있다. 빨강, 노랑, 초록, 조금만 채도가 낮아져도 다시 진한 색으로 덧칠한 듯한 풍경들. 집 안 인테리어도 그렇고, 북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화 유화나 민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일본 감각으로 보면 다소 강하고, 때로는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색감이다.

흥븡3.jpg 흥븡 기념일 행사 전경

처음에는 단순한 취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원색을 좋아하나 보다.' 그런데 오래 보고, 반복해서 보다 보니 '단순히 취향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강한 햇빛 아래에서 살아남은 색

베트남은 햇빛이 강한 나라다. 회색, 베이지, 파스텔톤은 햇볕과 비, 먼지 속에서 금방 묻힌다. 반면 원색은 다르다. 멀리서도 보이고, 그늘에서도 살아 있고, 비를 맞아도 존재감이 남는다. 시장 간판, 거리의 가게, 집 안 장식까지, ‘눈에 띄는 색’은 곧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즉 원색은 미학이기 전에 생존 전략에 가까운 것이다.


전통 재료가 만든 미감의 방향

하노이 북부의 그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섬세한 색의 겹침보다는, 분명한 색 대비. 옻칠, 천연 안료, 금박, 주홍, 황토. 이 재료들은 미세한 그라데이션보다 강한 색을 더 잘 드러낸다. 결국 '잘 표현되는 방식'이 미감이 되었고, 그게 쌓여 지금 우리가 보는 ‘베트남식 색감’이 됐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5일 오후 08_50_53.png 하노이 풍경화의 전형적인 이미지

색은 장식이 아니라 의미였다. 베트남에서 색은 단순히 예쁜 선택이 아니다. 유교, 불교, 민간신앙이 겹쳐 있는 사회에서 색은 늘 의미를 가진다.

빨강은 복과 생명력, 액막이의 색이고, 노랑은 중심, 권위, 번영을 뜻한다

그래서 제사 공간, 사원, 축제 장식, 심지어 집 안 인테리어까지, '기운이 좋은 색'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색은 분위기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국기의 색은 생활로 내려왔다. 베트남 국기의 붉은 바탕과 노란 별은 단순한 정치 상징이 아니다. 붉은색은 독립과 희생, 투쟁의 역사이고, 노란 별은 민중이 중심이 된 국가를 뜻한다. 이 상징은 관공서에만 머물지 않았다. 학교로, 거리로,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그래서 빨강과 노랑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불안한 색’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색이 됐다.


그런데 북부는 더 진하다.

특히 북부, 하노이 쪽에서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보인다. 정치·역사·전통의 중심이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부가 비교적 실용과 혼합의 색이라면, 북부는 여전히 상징과 의미의 색에 가깝다. 그래서 하노이의 그림은 유난히 진하고, 북부의 인테리어는 설명 없이도 '힘'이 느껴진다.


베트남 사람들이, 특히 북부 사람들이 원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재료, 신앙, 국가의 기억이 색이라는 언어로 남아 있는 결과다. 그 색이 낯설다면, 아직 베트남이 쓰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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