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베트남 생활 문화 비교 ③ 집과 생활 공간

집은 그 사회의 생활 철학을 닮는다

by 한정호

집은 어디까지 생활인가?


베트남에서 처음 빌라를 임차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구조가 아니라 분위기였다. 문을 열면 집과 거리의 경계가 생각보다 얇았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생활 소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누군가는 현관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논다. 집이 완전히 닫힌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집의 감각은 조금 다르다. 문을 닫으면 생활이 시작되는 구조이다. 집은 바깥과 분리된 휴식 공간이고, 사적인 영역을 지키는 장소이다. 소음과 시선, 움직임은 문 안에서 정리된다. 집은 '돌아와 머무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다.


베트남의 생활 공간은 그 경계가 훨씬 유연하다. 집 앞 골목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고, 현관은 실내와 실외 사이의 완충 지대처럼 쓰인다. 어른들은 집 앞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지나가는 이웃과 말을 건넨다. 집은 개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와 연결된 생활 거점에 가깝다.

이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했던 이유는, 우리 역시 한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 푸미의 저녁시간에 주의를 주거지를 돌아보면 마치 '응답하 1988'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마치 그 시대에 우리 모습에 베트남 현지인들을 앉혀 놓은 모습이다. 골목에 평상이 놓이고,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아이들에게 골목은 놀이터였고, 이웃의 생활 소리는 자연스러운 배경이었다. 집은 개인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동네의 일부였다.


도시가 성장하고 생활 방식이 바뀌면서 공간의 의미도 달라졌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는 사생활과 효율을 강조했고, 집은 점점 외부와 분리된 휴식 공간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문화 변화라기보다 도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밀집된 인구, 교통, 안전, 관리의 필요가 생활 공간을 더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베트남 현지인들은 이전의 생활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서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저녁 시간에 대현 스피커를 켜 놓고 마이크를 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맥주로 목을 축이고, 하루의 피로를 털어버린다. 옆짐 사람들은 '나는 지금 저렇게 안 해도 내일 아니면 언젠가 그럴 수 있으니', 뭐라 하지않고 들어준다. 물론 한국인과 외국인이 많이 사는 푸미흥의 아파트 단지 밑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긴 했는데 외국인의 항의와 고발이 많아지자 저녁 몇 시 이후에는 스피커 사용을 금하도록 자체 규정을 실행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현지인들의 자율적 선택이 아닌 외국인들에 의한 타의적 규제와 같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베트남의 열린 생활 공간은 단순히 '다른 문화'라기보다 도시 발전 단계에서 아직 살아 있는 생활 방식의 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골목과 현관, 열린 창문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온도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기억과 닮아 있다. 결국 집을 쓰는 방식은 도시가 어떤 속도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공동체와 개인 공간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준다. 닫힌 공간은 안정과 사생활을 강조하고, 열린 공간은 관계와 생활의 흐름을 강조한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사회가 선택한 생활 방식의 결과일 뿐이다.


현대 아파트 문화에서도 이런 골목의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구조는 닫혀 있어도 사람의 생활 방식까지 닫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짧은 인사, 아이들이 함께 노는 작은 놀이터, 저녁 시간 벤치에 앉아 이어지는 대화 같은 장면은 여전히 공동체의 온도를 만든다. 결국 공간의 형태보다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벽이 높아졌다고 관계까지 멀어질 필요는 없다. 아파트라는 현대적 구조 안에서도, 사람들은 충분히 골목의 감각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 속에서 관계를 선택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20250706_164031.jpg 단독주택들 사이로 만들어진 골목은 밤이 되면 마을 쉼터가 된다
20250706_180625.jpg 퇴근후 동네 어른들이 마당에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그래서 집을 바라보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어떤 관계를 선택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벽과 문은 생활을 구분하는 도구일 뿐, 사람 사이의 온도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닫힌 구조 속에서도 우리는 인사를 건네고, 시간을 나누고,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골목의 기억은 과거에만 머무는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선택 가능한 생활의 태도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거리로 서로를 바라볼 것인지 보여주는 자리다. 결국 공간은 변해도, 생활의 방향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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