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베트남 생활 문화 비교 ④ 관계와 감정 표현

말하지 않는 마음, 바로 드러내는 마음

by 한정호

베트남에서 생활하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꽤 직선적으로 느껴진다. 웃으면 크게 웃고, 싫으면 바로 표정이 드러난다. 좋고 싫음이 비교적 빠르게 표현된다. 장터에서 값을 흥정할 때도, 일터에서 의견이 오갈 때도 감정이 숨겨지지 않는다.

처음엔 이게 조금 낯설었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관계의 리듬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한 번 걸러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상대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살피고, 말의 톤을 조절한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맥락을 읽는 방식이 관계의 기본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이 관계의 미덕처럼 여겨진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숙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감정 표현이 관계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웃음과 불만, 애정과 서운함이 생활 속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오간다.


이 차이는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의 차이에 가깝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집단 조화와 체면을 중시해 왔다.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내부에서 조율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감정은 종종 완충된 형태로 표현된다.

베트남의 경우 공동체 생활 속에서 직접적인 소통이 더 자연스럽게 유지되어 왔다. 생활 공간이 열려 있고, 사람 사이의 접촉이 잦은 환경에서는 감정을 빠르게 표현하고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감정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요소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도 반응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식 관계는 조용히 맞춰가는 리듬에 가깝고, 베트남식 관계는 바로 부딪히고 풀어내는 흐름에 가깝다. 어느 쪽이 더 진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런 표현 방식의 차이를 역사적 배경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오랜 왕권 중심 질서와 이후의 강한 국가 권력 구조를 거치며 집단 조화와 위계 감각을 생활 규범으로 내면화해 왔다. 말과 감정 역시 관계의 균형을 해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반면 베트남은 왕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지역 공동체와 생활 단위의 자율성이 비교적 강하게 작동해 왔고, 일상 속에서 직접적인 의사 표현이 관계 유지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것이 모든 개인의 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구조의 기억이 생활 속 소통 방식에 일정한 결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참조 ] 08화 베트남의 수평적 지배 구조 07화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방식이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 뒤에 숨은 친근함을 읽게 되고, 조심스러운 말 속에서 배려를 발견하게 된다. 문화는 감정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정하는 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관계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는 마음과 바로 드러내는 마음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그 바탕에는 사람을 향한 의도가 있다. 살다 보면 이런 차이는 오해를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이해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느 방식이 옳으냐가 아니라, 그 표현 뒤에 있는 마음을 읽으려는 태도다.


그래서 관계를 이해한다는 건 말의 형태보다 감정의 방향을 보는 일에 가깝다. 직선적인 표현도, 한 번 걸러진 말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향해 있다. 문화는 감정을 숨기거나 드러내는 방식을 다르게 만들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서로 다른 표현에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의 결을 읽으려 할 때, 관계는 훨씬 부드럽게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감정을 말하지만, 그 목적은 늘 같다. 이해받고, 연결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관계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감정은 다르게 말해도, 결국 사람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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