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민족대이동

Tet이 시작되면 나라가 움직인다

by 한정호

베트남의 민족대이동 : Tet이 시작되면 나라가 움직인다

베트남에서 Tet(설)이 다가오면 도시의 공기가 먼저 달라진다. 길거리에는 선물 세트가 쌓이고, 오토바이에는 커다란 짐이 묶인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과 기대가 함께 흐른다. 이 시점부터 베트남은 서서히 귀향 모드로 들어간다. 외국인의 눈에는 단순한 연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Tet은 '돌아가는 시간'이다. 일 년 동안 도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하면서 나라 전체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베트남식 민족대이동이다.


왜 그렇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까?

이 대규모 귀향이 단순히 농경 사회의 생활 리듬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교 문화권에서 설은 가족과 조상을 중심에 두는 가장 중요한 의례의 시간이었다. 농경 사회에서는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공동체 단위로 정리되었고, 유교적 가치관은 여기에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강한 의미를 더했다. 조상에게 인사를 드리고 부모를 찾아뵙는 행위는 개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 가까웠다. 그래서 중국, 한국, 베트남 모두 산업화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한 이후에도 설이 되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 유지되었다. 명절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고 가족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는 문화적 의식에 가깝다. 그래서 Tet 귀향은 선택이 아니라 거의 문화적 의무에 가깝다.


베트남 사회에서 설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해의 시작을 함께 맞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효도의 의미를 넘어 '나는 여전히 가족 공동체의 일부'라는 확인이 담겨 있다. 도시에 나와 일하는 젊은 세대에게 귀향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 부모에게 한 해의 성과를 보여주는 시간

- 가족에게 선물을 건네는 책임

- 고향에서 자신이 여전히 환영받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래서 교통이 아무리 혼잡해도, 표를 구하기 힘들어도 사람들은 돌아간다. Tet에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개인 일정 문제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균형과도 연결된다.


귀향길 : 오토바이 위의 가족

Tet 직전 고속도로와 국도에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토바이 한 대에 가족이 함께 올라타고 이동하는 모습이다. 앞에는 아버지, 중간에는 아이, 뒤에는 어머니. 발치에는 선물 상자와 생활용품이 묶여 있다. 때로는 작은 귤나무나 꽃가지까지 싣는다. 도시에서의 일상이 그대로 고향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밤이 되면 도로에는 헤드라이트가 길게 이어진다. 귀향 행렬은 마치 빛의 강처럼 흐른다. Tet은 그렇게 길 위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오토바이는 베트남 서민 생활의 상징이자 가족의 이동 공간이다. 먼 길을 함께 달리는 동안 가족은 말없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외국인의 눈에는 위험하거나 힘들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설 풍경이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8일 오후 07_31_37.png 오토바이 귀향 모습 이미지

한국의 옛 설 귀향과 닮은 풍경

이 모습은 한국의 1970~80년대 설 귀향을 떠올리게 한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사람들로 가득 차고, 선물 보따리를 들고 이동하던 풍경 말이다. 그 시절 한국에서도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가족의 결속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좌석이 부족해 통로에 앉아 가거나 몇 시간을 서서 이동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베트남의 Tet 귀향은 바로 그 시기의 한국과 닮아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이동한 사람들이 명절만큼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그대로 겹친다. 차이는 이동 수단뿐이다. 한국이 기차와 버스였다면,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중심이다. 그래서 Tet 기간의 베트남을 보면, 과거 한국의 집단적 기억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시가 멈추는 시간

연휴가 시작되면 대도시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진다. 상점은 문을 닫고, 길은 한산해진다. 평소의 소음이 사라진 도시에는 명절 특유의 여백이 흐른다. 이 정적은 베트남 사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일보다 가족, 속도보다 관계가 우선되는 순간이다.

또한 이 때는 외국인에게는 베트남을 속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귀향 준비로 분주한 시장 풍경,

오토바이 귀향 행렬, 꽃 시장과 명절 장식 등을 보면서 화려함과 베트남 특유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용해진 도시의 분위기와 현지 가족 방문 문화를 체험하면서, 베트남 사회의 중심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Tet 기간에 조심하면 좋은 점

한편 외국인은 Tet 기간이 평소와 다른 생활 리듬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귀향 인파로 인해 교통 혼잡과 이동 지연이 흔하게 발생하고, 많은 상점과 서비스가 며칠간 문을 닫기 때문에 일상적인 편의가 제한될 수 있다. 현금 인출기 역시 이용자가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숙박이나 교통편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선택지가 크게 줄어든다. 도로에는 장거리 이동 차량과 오토바이가 평소보다 많아 안전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온 나라가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잠시 속도를 늦추는 시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Tet은 결국 사회 전체가 숨을 고르며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특별한 시기다.


Tet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다. 도시에서 분산됐던 가족이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다. 나라 전체가 속도를 늦추고 관계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시기를 관찰하면 베트남이라는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Tet은 결국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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