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뿌리, 다른 풍경 (1) 귀향이 갖는 의미
한국과 베트남의 설은 달력만 공유하는 명절이 아니다. 가족, 조상,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실제 풍경은 꽤 다르다. 같은 설인데 분위기와 움직임이 다르다. 이 차이를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이 시간을 대하는 방식까지 읽을 수 있다.
귀향 : '이동'의 규모와 의미
한국 설은 대규모 귀향 전쟁으로 시작된다. 기차표 전쟁, 고속도로 정체는 설의 상징 같은 장면이다. 베트남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이동 방식이 더 생활적이다. 오토바이에 선물과 짐을 싣고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모습이 흔하다.
차이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정서에 있다. 한국의 귀향은 '의무와 책임'의 느낌이 강하고, 베트남의 귀향은 '만남과 복귀'의 분위기가 더 짙다는 점이다.
- 한국의 귀향은 '의무를 수행하는 이동'에 가깝다. 한국 설 귀향은 흔히 '전쟁'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움직여서가 아니라, 귀향이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가족 시스템 속 역할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부모를 뵙고 인사하고,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과 얼굴을 맞추는 게 ‘예의’이자 ‘도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출발 시간, 도착 시간, 차례 시간, 친척 집 방문 순서까지 일정처럼 굳어지고, '보고 싶음 + 피곤함 + 부담감'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온다. 그래서 귀향은 '따뜻함'만큼이나 '책임감'이 같이 따라붙는다. 이 분위기에서 교통 정체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책임이 집단적으로 몰리는 사회 리듬의 상징이 된다. 한국에서 귀향이 '큰 이동'인 이유에는, 이동이 크다는 의미에 책임감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베트남의 귀향은 '복귀와 재결합'의 색이 더 짙다. 베트남(Tết)에도 민족 대이동이 있다. 다만 같은 이동이라도 정서가 조금 다르게 흐른다. 베트남 귀향은 '의무'보다는 '돌아감'의 감각이 강하다. ‘떠나 있던 사람이 돌아오는’ 이야기다. 도시에 나와 일하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가족이 모이는 순간 자체가 명절의 핵심 장면이 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귀향은 일정이라기보다 ‘만남’이다. 꼭 차례 같은 고정 의식만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단 돌아가서 같이 먹고 같이 웃는 것'이 목적이 된다.
관계의 온기가 먼저 온다. 부담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의 결은 '해야 한다'보다 '돌아간다' 쪽으로 많이 기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잘 돌아가길' '무사히 도착하길' 같은 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귀향 자체가 명절의 시작이고, 무사 귀환이 곧 복이 된다.
- '오토바이 귀향'이 상징하는 건 수단이 아니라 생활감각이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귀향은 이동이 가족 생활의 연장선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선물과 짐을 싣고, 아이를 태우고, 여러 번 쉬어가며 이동한다. 이동 자체가 이미 '가족 이벤트'처럼 된다. ‘길 위의 명절’이라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것은 도로가 그냥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명절 감정이 흘러가는 공간이 되는 느낌이다.
'버티는 이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동' : 한국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목적지로 ‘돌격’하는 느낌이라면, 베트남은 이동 자체가 하나의 삶의 장면이 된다. 한국의 귀향은 ‘도착’이 중요하다면, 베트남의 귀향은 ‘돌아가는 과정’ 자체가 명절인 것이다.
결국 설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두 사회에서 가족과 시간을 연결하는 방식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의 귀향은 역할과 절차 속에서 가족을 확인하는 흐름으로 나타나고, 베트남의 귀향은 떠나 있던 사람이 다시 모이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실린다. 어느 쪽이 더 옳거나 자연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명절이 서로 다른 생활 리듬 속에서 다르게 펼쳐지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설은 두 사회가 시간을 정리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귀향 풍경만 보아도 명절을 맞이하는 태도와 생활 감각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다음 편에서는 설 당일의 행동 문화 — 조상과 제례, 음식, 새해 인사 같은 장면을 통해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명절이 어떻게 다른 풍경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