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 설문화 비교

같은 뿌리 다른 풍경(2) 한국 vs 베트남 차례상

by 한정호

설이나 명절이 되면 집 안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흐른다. 차례상을 차리고, 음식을 정리하고, 가족이 모인다. 이 장면은 한국과 베트남 모두에서 익숙하다. 조상을 기억하고 새해를 여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뿌리는 같다.


그런데 차례상을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꽤 다르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설날 아침, 집 안 공기는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아 있다. 상 위에는 흰 접시들이 줄 맞춰 놓이고, 전과 나물, 탕과 과일이 정갈하게 자리를 잡는다. 음식은 아무렇게나 놓이지 않는다. 생선의 방향, 과일의 위치, 마른 음식과 국물 음식의 자리가 나뉜다.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상 앞에 서면 자세부터 달라진다. 이 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을 초대하는 자리이자, 집안의 질서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의식의 무대다.

베트남 집 안 제단 앞에도 음식이 놓인다. 향이 먼저 피워지고, 과일과 반쯩, 차와 술이 함께 오른다. 접시는 서로 완벽히 맞춰지기보다, 집에서 준비한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아이들은 주변을 서성이고, 어른들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제단은 엄숙하지만 분위기는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조상을 모시는 행위가 특별한 의식이라기보다, 가족의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똑같이 조상을 기리는 자리지만, 상이 만들어내는 공기는 다르다. 한국의 차례상이 질서와 형식을 보여준다면, 베트남의 차례상은 생활과 흐름을 보여준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음식 배열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회가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어온 방식의 차이다.


상의 구조 : 규범 vs 생활

한국 차례상은 구조가 중요하다. 어느 음식이 어디에 놓이는지에 대한 전통 규칙이 있다. 좌포우혜, 어동육서 같은 배치 원칙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질서와 상징의 표현이다. 반면 베트남의 차례상은 훨씬 생활적이다. 과일, 차, 술, 음식들이 올라가지만 배치의 엄격함보다는 정성과 풍성함이 중심이다.

제사상.jpg 제사상 차림 [한국일보 사진자료 재인용]
가정 제단.jpg 베트남 직원 가족 제사상

한국이 '형식의 미학'이라면, 베트남은 '생활의 정성'에 가깝다.


음식의 의미 : 상징 vs 공유

한국 차례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우주 질서와 조상에 대한 예(禮)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체계다. 대표적인 특징은 이런 구조다.

- 배열 자체가 곧 의미이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같은 규칙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음양오행 사상과 연결되어 자연의 균형을 상 위에 재현하는 개념이다. 빨강/흰색, 동/서 배치, 건어물/생물 구분 등 모든 것이 '조화'를 보여주는 상징 언어인 것이다.

- 음식 종류들도 모두 상징성을 띄고 있는데 떡은 시간의 순환, 공동체 결속, 나물은 계절과 자연을, 전은 정성과 노동의 축적 그리고 술은 조상과 후손의 매개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음식 하나하나가 생활의 축약판이다.

- 차례의 핵심은 의례 → 감사 → 기억이다. 음식은 조상에게 먼저 올리고, 이후 후손이 나누지만 중심은 '보여 드리는 행위'에 있다. 그래서 한국 차례상은 질서·형식·상징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의 차례상 음식은 훨씬 생활 밀착적이다. 핵심은 '함께 먹는 풍요'이다. - 베트남의 대표 설 음식인 반쯩 (Bánh chưng)은 땅과 농경, 조상과 삶의 연결을 상징하고, 과일은 번영과 자손의 지속, 돼지고기, 닭고기는 현실적 풍요를 상징하며, 차와 술은 조상과의 교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풍성함이 곧 축복'이라는 그들의 인식이다.

- 배치의 규칙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신 중요한 건, '집안이 풍족해 보이는가?' '조상에게 잘 준비했다는 마음이 보이는가?'라는 것으로, 형식보다 정성과 공유가 핵심이다.

- 특히 베트남 차례상 음식은 거의 즉시 가족 식사로 이어진다. 이 과정이 핵심이다. 조상에게 올린 음식은 가족의 결속, 공동 식사를 통한 축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즉, 베트남에서 제사는 살아 있는 가족을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의식의 분위기 : 절차 vs 흐름

한국에서의 차례는 절차로 구성된 '의식의 시간'이며, 한국 차례의 핵심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시간을 의식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례가 시작되면 그 시간은 일상의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의식 중'이라는 공통 인식이 생긴다.

- 순서가 의미를 만든다 : 강신 → 참신 → 헌작 → 독축 → 사신 같은 흐름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조상을 맞이하고 보내는 상징적 여정이다. 이 순서들을 따르는 이유는 조상에 대한 예를 지키고, 가족 내 역할 질서를 확립하고 전통을 계승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즉, 시간 자체가 형식화된 존중이 된다.

- 참여 방식도 절제되어 있다 : 말을 크게 하지 않고, 움직임도 제한된다. 아이들조차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하는 시간'임을 배운다. 이것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의식 공간을 유지하는 집단적 합의다. 의식이 끝나야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차례가 끝나면만 비로소 음식이 나눠지고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의 제사상은 의식과 생활이 명확히 구분된다. 그래서 한국 차례는 시간을 잠시 성스럽게 묶어두는 행위에 가깝다.


반면 베트남 제사은 흐름 속에 녹아 있는 '관계의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베트남의 차레 분위기는 훨씬 생활과 이어진 흐름에 가깝다. 향을 피우고, 조상에게 말을 걸고, 소원을 빌고. 이 모든 과정이 일상의 연장선처럼 진행된다.

- 베트남도 정해진 의례 순서는 있지만, 엄격하게 '틀리면 안 된다'는 분위기는 약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 가족이 함께 서 있는 순간, 기원과 감사의 표현들인 것이다. 즉 베트남의 차례는 형식보다 관계의 지속성이 핵심이다.

- 그래서 대화와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옆에서 이야기하고, 음식 준비와 향 올리기가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 베트남인들에게 제사는 생활을 잠시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시간이다. 실제로 제단은 집 안의 일부이다.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향을 올린다. 즉, 제사는 특별한 날의 행사라기보다 관계 유지의 반복 행위다.

20250424_164229.jpg 가정집 내 상시 설치되어 있는 제단 전경

한국에서 제사가 곧 시간을 구분하고 형식을 통해 존중을 표현하는 '의식의 시간'이라면, 베트남에선 생활 흐름 속에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며 '지금은 조상과 함께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 모두 조상을 기리는 행위지만, 한국은 질서로 경건함을 만들려 한다면, 베트남은 조상과의 연결로 친밀함을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한국은 조선 시대 이후 유교 의례가 사회 규범으로 깊게 자리 잡았다. 한편 베트남은 유교 영향 위에 불교와 민간 신앙이 함께 작용하면서 의례가 더 유연하게 발전했다.

① 국가 운영 방식의 차이 — 규범 사회 vs 생활 사회

한국에선 의례가 곧 사회 규범이었다. 즉 조선 이후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 매뉴얼이었다. 가정 구조, 장례·제례, 연장자 질서, 여성·남성 역할까지 의례를 기준으로 정리됐다. 즉, 의례는 개인 취향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제사와 차례도 절차가 중요했고, 배열이 의미를 가졌고 형식을 지키는 것이 곧 예(禮)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의례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규칙'에 가까웠던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규범보다는 생활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유지되어 왔다. 베트남도 유교 영향을 받았지만, 국가 체계보다 마을 공동체 문화가 더 강했다. 촌락 단위 생활, 농경 공동체 협력, 가족 중심 의사결정 이라는 구조하에 의례는 규율보다는 관계 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제사·차례가 생활 흐름 속에 섞였고, 형식이 지역마다 달랐고, 상황에 맞게 변형된 것이다. 즉, 베트남에서 의례는 '공동체를 묶는 실용적 장치'였던 것이다.


② 종교 구조 : 단일 규범 vs 혼합 신앙

조선 사회는 유교가 공식 이념이었다. 불교·무속은 존재했지만 의례의 표준은 유교였다. 그래서 제사 절차가 정형화되고, 가문 단위 규칙이 생기고, 형식이 권위를 가졌다. 또한 의례는 '틀을 지키는 것 자체'라는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다층적 신앙 구조를 지녔다. 베트남 사회에서 유교는 사회 질서를, 불교는 삶의 위로를, 민간 신앙이 일상을 보호하는 역할이 동시에 작동했다. 이 구조에서는 의례가 절대 규범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조정되는 실천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제사도 기원 중심, 가족 참여 중심으로 유지되었고, 지역별 변형도 가능하면서 발전한 것이다.


③ 시간 인식 : 의식 시간 vs 생활 시간

한국은 의례를 통해 일상과 의식을 분리했다. '지금은 제사 시간'이라는 경계가 명확히 설정된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의례는 생활 속 흐름에 녹아 있다. 향을 올리고 기원하는 행위가 상시 진행되고 있는 일상의 연장선인 것이다.


결국 한국과 베트남의 차례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온 의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의례를 통해 시간을 구분하고 질서를 확인하며, 형식을 통해 조상에 대한 존중을 표현해 왔다. 반면 베트남은 의례를 생활 속에 녹여 관계를 이어가고, 흐름과 참여를 통해 조상과의 연결을 유지해 왔다. 하나는 의식을 통해 경건함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생활을 통해 친밀함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다를 뿐, 두 나라 모두 조상을 기억하고 가족을 묶는다는 본질은 같다. 결국 차례상 위에 놓인 음식과 향, 그리고 그 앞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세대를 잇고 삶을 이어가려는 공통된 노력들이다.


명함 앞.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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