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힐링', 현지인에겐 '관계형성'의 시간
오늘 아침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단체를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의 영상을 찍다보니, 분보 후에 식당을 찾은 시간은 7시 25분. 조금전 출근을 위해 사람들이 출발을 한 것처럼 이 곳 식당에는 먼저 아침식사를 마치고 떠나버려 나 홀로 식사테이블이 되었다.
오래간만이다. 약 3주만인가? 주인과 아주머니가 나를 반기며 왜 이렇게 오래 안 보였냐고 한다. "전에 몇 번 왔었는데 설 기간이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더라"고 하자 웃으며 "좀 오래 쉬었지요"라며 내게 분보후에를 건넨다. 오늘 좀 더 푸짐해 보인다. 간만이라 서로가 반가운 것이리라.
국물에서 김이 오르고, 테이블 위 고추와 라임, 초록 상추가 선명하다. 매운 베트남 고추를 넣고 양념을 더해 국물을 휘젓는다. 천천히 한 숟가락 떠먹는다. 뜨겁고 얼큰하다. 속이 풀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건너편을 보니 출근을 한 것 같았던 사람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지금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회사 직원들이 업무 시작전 모여 수다를 떨고 있기도 하다.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속닥이는 모습도 보이고.
사실 이 시간은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기 전의 준비 구간이다. 말을 줄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조금은 혼자 있고 싶은 시간. 얼큰한 베트남 고추의 얼얼함을 달래는데는 카페쓰어다가 최고. 일상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시지만 오늘은 간만에 카페쓰어다를 주문했다. 카페의 강아지도 내게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하더니 이내 아무일 없다는 듯이 가버린다.
얼음이 가득 든 잔에 카페쓰어다가 내려진다. 달고 진한 커피 한 모금. 나는 그걸 마시며 잠시 멍을 때린다. 아침의 새소리를 듣고, 팔등을 타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이 시간이 좋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 힐링타임이랄까?
그런데 주변은 전혀 다르다. 옆 테이블은 이미 작은 회의실 같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처리해야 할 일, 누가 누구를 만났다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까지 한꺼번에 오간다. 손은 움직이면고, 말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쉬고 있는데, 그들은 쌓고 있는 것이다. 관계를. 휴대폰을 돌려 보이며 화면을 설명하고, 어깨를 기울여 무언가를 상의하고, 전화가 오면 자연스럽게 스피커를 켠다. 현지인들에게 커피는 쉼표가 아니다. 접속사 같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장치.
한국에서 커피는 개인의 공간을 확보하는 음료에 가깝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펴고, 아무 말 없이 한 시간을 보내도 된다. 그 시간은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자 나만의 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다. 혼자 앉아 있는 것 같던 사람 옆에 곧 사람 한 둘이 모여져 있다. 그에게 침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관계는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회. 자주 만나야 유지되는 구조.
한국인에게 아침은 개인의 정비 시간에 가깝고, 베트남 사람들에겐 아침은 관계를 다시 묶는 시간에 가깝다.
나는 혼자 정리한다. 그런데 그들은 함께 시작한다.
예전에는 회사 앞에서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직원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일에는 관심 없고 시간만 보내는 것 아닐까?’
특히 은행 직원들이 창구가 아닌 커피숍에서 고객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하일랜드에 앉아 직원들끼리 소통하는 장면을 찍던 중, 한 여성이 나를 보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은 지금 수다를 떠는 게 아니라, 관계를 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사회에서 관계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일이고, 자산이고, 기반이다.
모닝커피 한 잔. 같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