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정찰기 조종사였던 아버지
이 글은 사실 아버님에 대한 작은 변호다.
어제 저녁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전쟁 트라우마에 관한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그 영상 속에는 아버님의 젊은 시절 사진들도 함께 넣었다. 정찰기 옆에서 헬멧을 쓰고 서 있는 사진, 동료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 기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들
사진을 하나씩 다시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영상을 보는 분들 가운데 나와 같은 오해를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월남전을 비교적 편하게 보내고 오신 것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사진 속 전쟁과 실제 전쟁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의 사진들은 대부분 평온해 보였다. 정찰기 앞에 서서 찍은 사진, 동료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 해변에서 휴식을 즐기는 듯한 사진들. 전쟁터라기보다는 젊은 장교의 해외 근무 기록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오래 남아 있었다.
“난 진짜 베트콩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다.
‘전투를 직접 하는 부대보다는 조금 덜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사진들을 다시 바라보면서 나는 전혀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 속 전쟁과 실제 전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투이호아의 하늘, 1968년
아버지가 근무하던 곳은 베트남 중부 해안의 투이호아(Tuy Hòa)였다. 1968년, 월남전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다. 그해 초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대규모 공세를 벌이면서 베트남 전역의 전선이 크게 흔들렸다. 전쟁의 긴장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고 정찰과 항공 지원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졌다.
투이호아에는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사용하는 공군기지가 있었다. 해안 평야와 밀림이 이어지는 지형이라 정찰 임무가 특히 중요했던 곳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한국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였다. 계급은 중위였는지 대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 젊은 장교였던 것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작은 정찰기를 몰고 밀림 위를 낮게 비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전쟁
정찰기의 임무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이런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밀림 위를 비행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밀림 속에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그것은 베트콩들이 숨어 있다는 흔적이었다. 아버지는 그 좌표를 보고했고 곧 그 지역에는 포격이 이루어졌다.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 위 정찰기는 가장 피하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 비행기가 보이는 순간 먼저 숨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발각되는 순간 그 지역이 곧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했던 “베트콩을 직접 본 적은 없다”라는 말은 전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있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하늘 위 조종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그만큼의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밀림 어딘가에서 대공포가 올라올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탄이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런 하늘 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월남전 당시 미군 기준으로도 2,500명 이상의 조종사가 전사했고, 2,000명 이상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수천 대의 항공기가 격추되었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대부분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 숫자를 보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가 어떤 전쟁 속에 있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착륙
어머니가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네 아버지가 비행 정찰을 나갔다가 비행장이 아닌 어디 평지에 잠깐 착륙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왜 그런 착륙을 해야 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기체 문제였는지, 연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 당시에 나는 묻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곳은 안전한 비행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밀림과 평야 사이의 땅. 언제 어디서 무장한 사람들이 뛰쳐나올지 모르는 곳. 그런 곳에 비행기를 내려야 했다는 것은 조종사에게는 목숨을 담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동안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한 비행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은 전쟁 속에서 한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위험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전쟁 속의 젊은 얼굴
아버지의 사진들을 다시 보면 여러 장면들이 보인다.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는 기지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 있는 사진. 키 큰 풀 사이를 걸으며 찍은 사진. 군 막사들이 이어진 언덕 위에서 친구와 어깨를 감싸고 웃고 있는 사진.
예전에는 이 사진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전쟁 속에서도 여유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이 사진들은 전쟁이 없는 순간이 아니라, 전쟁 사이에 잠깐 멈춰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제야 드는 생각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늘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 조금은 덜 위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아버님은 월남전을 편하게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밀림 위의 하늘을 날고 계셨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 대공포가 올라올지 모르는 하늘, 어디에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밀림 위를 날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아버님이 계신 것은 어쩌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야 이런 말을 드리고 싶다.
아버님, 그동안 제가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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