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호 May 24. 2024

베트남에선 인맥이 자산이다

베트남에서 그 사람의 세(勢)는 인맥을 통해 드러낸다 

 주재원으로 점포개발 업무를 진행할 때의 상황이다. 많은 브로커들이 백화점 부지를 소개시켜 주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 왔는데, 대부분의 베트남 브로커들은 부지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자기가 어느 省 인민위원장을 만나 같이 찍은 사진, 심지어는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꺼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 가격이나 조건 등은 아직 비밀사항이고, 한국 본사에서 보증금을 에스크로 어카운트에 넣으면 모든 자료나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황당한 제안을 하곤 했다.

바리아 인민위원회 미팅 당시 찍은 사진

 코로나 전에 KNG Mall의 사장과 바리아붕다우성의 인민위원장을 만나 사업을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다. 개인이 공개적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어색하여 몰래 위원장의 사진을 한 장 찍고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어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에겐 이런 것이 최대의 기회인 듯 하다. 이런 기회에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으면 자기가 바로 인민위원장과 잘 아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오래 사셨다는 분들 중에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중에는 이런 분들이 있다. 지역의 경찰청장을 알고 있으니, 음주 운전이나 교통사고가 나도 처리를 다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관공서의 누구를 알아 세금을 깍거나, 허가 등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베트남에 현지화된 한국분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이다. 모두 인맥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기업에서 가장 파워가 있는 직업은 비서이다. 한국어를 조금 한다고 사장이나 팀장의 비서나 통역을 해주는 직원들은 베트남 현지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통역을 해 주면서 자기가 마치 무슨 권력이나 가진 듯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직원이나 미팅자와 대화는 3~5분을 진행하고는 내게 통역을 해주는 것은 3~4마디에 불과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얼마간 베트남어를 배우고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일정 정도를 알게 된 이후, 통역을 하는 중에 내가 “그 얘기는 내가 이해했고 아까 저분이 말한 그 부분은 정확히 뭐라 하신 건가?”라는 식으로 ‘나도 알아 듣고 있으니 대충할 생각 마라’라고. 그제서야 나의 눈치를 보고 자기의 말을 조금 줄이고 통역을 한다. 당사자인 한국사람이 앞에 있을 때도 이런 정도이니, 뒤에서는 얼마나 자기가 무슨 사장이라도 된 듯하게 행세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수긍이 가기도 한다.

 

 수산업을 하시는 분의 공장이 있는 중북부 도시중의 하나인 Vinh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장님은 당신이 계시는 곳에 우리 공감 매장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셨기 때문에 시장조사겸 지인들끼리 같이 여행을 다녀 온 것이다. 그 곳에서 3일간 사업 이야기도 하면서 힐링을 함께 했다. 시골의 해안도시였는데 그래서 더 조용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고 즐기다 돌아 온 것 같다.

 하루 저녁, 사장님이 저녁 식사에 그 지역의 방송사 국장을 초대하였다. 우리는 바다를 끼고 있는 수산물 식당에서 먼저 도착하여 회와 함께 나온 큰 게를 먹고 있었는데 국장이라는 사람 뒤에 3명의 아가씨들이 같이 따라 오는 것이었다. 나이도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이번에 채용된 인턴 사원들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고 그 중 한 명은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수준이었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고 왜 배웠냐고 묻자 한국방송을 많이 보게 되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인터넷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골 도시에서도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국장과 세 명의 새로운 참석자가 생겼으니 모두 건배를 하자며 잔을 돌리고 건배를 마치고는 그 네 명과 모두 악수를 하시는 것이었다. ‘여자가 나타났다고 꼼수로 악수를 하시는 군… ㅎㅎ’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얘기를 하다가 잔을 청하고 술을 마시면 그 두 사람이 꼭 악수를 하는 것이었다. 그 대상이 여자여도 마찬가지였다. 국장이 내가 다가와 몇 마디를 하고 술을 마신 뒤에도 다시 악수를 청하였고, 옆에 있던 자기 여직원과도 술을 마신 후엔 또 악수를 하였다. 여자 직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또 악수를 받아 주었다. 몰래 사장님 옆으로 이동해 “여기서는 술을 같이 마실 때 마다 악수를 하냐?”고 물으니 “금방 아네. 여기선 그래”라고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듯이 대답하셨다. 내 자리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왜 이 지역에선 서로 저렇게 악수를 하는 것일까?’ ‘자기들 끼리의 관계를 만들려는 일상의 행동이며, 이를 통해 유대감과 자기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려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은 북부와 남부를 막론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상대방과 대화 할 때 꼭 이름을 함께 부른다. 한국에선 보통의 말에서는 이름을 거의 넣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누구를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끝이지 “안녕하세요. 한 선생”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이름을 넣어 대화하고 있었다. 길에서 지나가다 나를 만나도 “Hello Mr.Han” 이였고 저녁에 퇴근할 때도 “잘 가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가요 Mr.Han”이었다. 심지어 zalo의 메시지에도 항상 대화내에 Mr.Han을 넣고 있었다. 가끔 ‘나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서운해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칭을 넣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표현해 내는 것이고,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베트남에서 다른 사람들과 빨리 친숙해지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대화 중에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좀 더 가깝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면 그들과 함께 나도 상대방에 관심이 있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설픈 인맥은 외국인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베트남의 종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