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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l 15. 2024

도시이름이 호치민이야?

통일 전 사이공, 통일 후 호치민

 서울의 세종로를 걷고 있는데 외국인이 다가와 거리 이름을 묻는다. "여긴 '세종로'이고요, 대한민국의 자랑인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을 기려서 붙인 이름이에요"라고 설명해 주었을 때, 만약 외국인이 "저 세종대왕 알아요"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데  "한글? 뭐 지네들 글이구먼..." 그러고 만다고 속상해하거나, '대한민국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 관광은 뭐 하러 오고 난리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존심은 구겨질 것이다.

 작년 후배와 직장 동료들이 호치민시 관광을 왔다 해서 하루 시내관광을 가이드해 주었다. 독립궁, 전쟁기념관 등을 같이 둘러보고 응우엔 후에 거리로 돌아와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앞에 있는  호치민 동상에 도달하였을 때이다. 한 친구가 "어. 그럼 호치민 시의 호치민이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뭐 한 사람이에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나라를 여행 오면서 이렇게도 준비 없이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공, 호치민, 호치민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지만 속으로 얘기해 줘 봐야 뭐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고 힘들여 알려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을!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앞 호치민 동상

 오늘 아침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호치민이 베트남 전 국민의 영웅이자, 베트남의 최대 도시 도시명으로 바꿀 정도로 위대한 사람인데 '진정 그 사람의 삶과 사상이 정말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그 정도로 각인되어 있을까?'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이기고 이전 수도의 이름을 북베트남의 영웅 이름으로 바꾸어 쓰고 있는데 남쪽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잘 쓰고 있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를 설명하는 동영상들을 찾아보았다.  


EBS 클립뱅크(Clipbank) - 베트남 국민을 사랑했던 혁명가, 호치민(Ho Chi Minh, a Revolutionary who Loved the Vietnamese) (youtube.com)


 위키백과에 따르면, 

 호치민( Hồ Chí Minh / 胡志明, 1890년 5월 19일 ~ 1969년 9월 2일)은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 초대 국가주석이다. 원래 이름은 응우옌신꿍(Nguyễn Sinh Cung / 阮生恭)이며 자(字)는 떳타인Tất Thành / 必成), 호(號)는 아이꾸옥(Ái Quốc / 愛國), 투옹(thu Ông / 秋翁)이다. 가명으로는 응우옌 아이꾸옥(Nguyễn Ái Quốc / 阮愛國), 리투이(Lý Thụy / 李瑞) 등을 사용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Bác Hồ / 伯胡)로 불리기도 한다.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 그는 생전에 가명과 필명이 모두 약 160여 개 이상 되었다.

  호치민은 베트남 독립운동의 주요 인물로 일생을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바쳤으며,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독립연맹 등을 창건하였고,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정부 수상(1946-1955), 국가주석(1945~1969)과 베트남 노동당 주석(1951~1969)을 지냈다.

 호치민은 1911년 대 초 사이공에서 프랑스 선적의 배에 요리사로 취직하여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가 유학하던 중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0년에는 중국에서 베트남 공산당(현 베트남 노동당 전신)을 창건하여 이끌었고, 제2차 세계대전중 베트남으로 돌아가 항일 독립 전쟁을 하였다. 전쟁이 종결된 1945년 9월 2일 프랑스의 괴뢰로 전락한 응우웬 왕조의 황제 바오다이를 폐위시키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1946년, 프랑스와 독립 협상을 추진하였으나 프랑스가 협상 전에 베트남 남부에 임시 정부를 설치한 뒤 이를 코친차이나 공화국으로 발전시키자 이에 반발, 협상을 결렬시킨 뒤 반프랑스 전쟁을 감행하였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최종 승리하여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미국, 소련 등이 가담하고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면서 북베트남의 최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전쟁을 지속하였다.

 호치민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였다. 호치민은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피식민지 독립국가의 정치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저명한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종전 후 베트남 공화국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그의 이름을 따 호치민시로 개명되었다.

                                                                                                   [ 위키백과 : 호치민 검색 발췌 ]

 

 한 나라의 국부이며, 전 국민의 대표 인물로 꼽히는 호치민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읽고 듣고 아는 것이 베트남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혁명을 하고도 인민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가슴이 찡함을 느꼈고, 현재의 우리 삶에도 의미가 있는 듯하다. 

 한 편 외국인이든, 누구든 우리나라 현대사에 이런 분을 소개해 달라하면? 그저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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