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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Sep 14. 2024

베트남 태풍피해에 위로를 전하며

한국과 베트남, 상부상조의 문화전통 비교 

 조용히 Trang 매니저가 내게 다가와 베트남 태풍 피해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묻는다. 철교가 무너지고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들의 영상을 보았기에 "알고 있다"만 간단히 대답하고 나의 일을 계속하려 하는데 갑자기 내게 Mr.Han도 기부를 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자기는 돈이 많지 않아 500,000 vnd 밖에 기부를 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편안하다며. 


 갑자기 IMF 때의 금 모으기 운동, 충남 태안군 기름 유출사건 때의 자원봉사 등의 기억이 스쳐갔다. 순간 '베트남에도 우리와 같은 상부상조와 단결이라는 문화와 전통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남부지역은 태풍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날씨가 차분했는데 북쪽의 피해상황에 자발적으로 기부를 했다는 말과 표정을 보면서 무언가 베트남에도 우리의 그것과 비슷한 문화와 전통이 존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닦는 모습 : 파이낸셜 뉴스기사 사진 재인용

 우선 한국의 상부상조의 문화와 전통을 사례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두레 (Dure): 두레는 농촌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협력 작업 조직으로, 주로 농사일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상부상조가 이뤄졌다. 한국은 전통 농업 사회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서로 농작물 수확을 돕거나 큰 일을 처리할 때 힘을 합쳤다. 두레는 자발적으로 결성된 조직으로, 주로 같은 마을 내에서 공동 노동의 개념으로 운영되었다. 일손이 부족한 가구를 돕는 형태로 계절별 농사일, 집짓기, 방앗간 돌리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레가 이뤄졌다. 이는 베트남의 Phường과 유사하며 공동체 중심으로 노동을 나누는 상부상조의 방식이다.

 2. 계 (Gye): 계는 경제적 상부상조의 대표적인 예다. 계는 서로 재정적인 지원을 위해 결성된 조직으로,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상호 부조 형태였다. 회원들이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모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주거나, 돌아가며 그 자금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결혼식, 장례식, 또는 큰 가구를 구입할 때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된 계는 오늘날에도 많은 부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Hội에서 비슷한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3. 품앗이 (Pumasi): 품앗이는 주로 노동 교환의 개념으로 이뤄졌다. 두레와 유사하지만, 품앗이는 개인 간의 노동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대가 없이 서로의 일을 돕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한 농가에서 벼를 수확할 때 다른 이웃이 와서 도와주고, 이후에 그 이웃이 필요할 때 같은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는 마을 사람들 간의 신뢰와 상호의존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베트남의 Gánh nặng chia sẻ 에서 유사한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4. 향약 (Hyangyak): 향약은 조선시대의 지역 공동체 규범이자 상부상조의 한 형태로, 마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규약을 지키면서 서로 돕는 조직이다. 향약은 윤리와 도덕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는 역할을 했다. 특히, 질병이나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서로 협력하여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했다. 이는 마을 차원의 상부상조 문화를 나타낸다.

 5. 향도 (Hyangdo): 향도는 한국의 불교와 관련된 상부상조 조직으로, 주로 절이나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다. 특히 큰 행사를 준비하거나 사찰을 건축할 때,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지원했는데, 불교 신앙과 연결된 향도는 단순한 노동뿐만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 상호부조의 성격을 띠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의 상부상조의 문화전통은 베트남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1. Phường (방) –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 베트남의 phường은 작은 지역 공동체로, 이웃끼리 협력하는 중요한 조직 중 하나이다. 과거 농촌 지역에서는 농업과 관련된 노동을 함께하는 일종의 협력 체계가 있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중요한 일들을 처리했다. 한국의 두레처럼 노동력 교환의 개념이 강한 것이다. 

 2. Hội (회) – 친목회와 상호부조 조직: Hội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결성된 집단을 의미하며, 상부상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농민끼리 모여 농사일이나 가축 관리를 돕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고, 장례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이웃들이 함께 모여 지원하는 방식도 있었다. 특히, 마을 단위로 형성된 이 모임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공동으로 자금을 모아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3. Tiền phúng (티엔 푹) – 장례식과 상부상조: 베트남의 장례문화에서 상부상조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장례식에서 이웃과 친척들이 자금을 모아 유족에게 전달하는 Tiền phúng 문화가 대표적이다. 이는 장례비용을 함께 부담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돕는 방식으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계처럼 서로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전통이 베트남에도 있는 것이다. 

 4. Gánh nặng chia sẻ (간난체셰) – 짐 나누기: 베트남 전통사회에서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 큰 일을 할 때, 예를 들어 집을 짓거나 농사일이 많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참여해 일을 분담했다. 이를 gánh nặng chia sẻ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짐을 나누어지는 상부상조의 문화이다.


 양국의 이와 같은 전통은 농업 중심 사회에서 상부상조 개념의 시스템으로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상부상조 시스템이 현대의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어 어려울 때 함께 돕고자 하는 측은지심이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적었던 내용들 중에 거지들에 관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의아해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아직 우리보다는 '서로 돕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더 남아 있는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이 이쁘다. 절에 가면 이번엔 태풍 피해를 입은 북부지역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시주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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