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맛본 분 보 후에(Bún bò Huế, 중부지방 대표 쌀국수)
사소한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누구라도 왔다 치면 길을 가다가 아는 베트남 음식이 있으면 일부러 "가볼래? 먹어봐야지"라며 내심 우쭐하는 마음으로 데리고 들어가 음식을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혼자가 되면 갑자기 '부끄럼 쟁이' 또는 '게으름 뱅이'가 되어 버린다.
분 보 후에(Bún bò Huế)는 호찌민시의 푸미흥에 살 때는 프랜차이즈 전문점이 있어 자주 찾아 먹던 베트남 중부지방의 대표 쌀국수이다. 이곳 푸미에 와서 분 보 후에를 전문으로 파는 현지 식당을 발견했지만, 선뜻 들어가 먹어 보지를 못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4시 40분에 일어나 티 바이(Thị Vải) 산에 올라 린 선 브우 티엔 뜨(Chùa Linh Sơn Bửu Thiền Tự) 사찰을 방문하고 내려오고 배가 고프고서야 혼자 식당에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이런 전문점에 가면 문제가 하나 있다. 분 보 후에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인데 그중에 또 종류가 많아 무엇을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내가 외국인인 것을 금방 눈치채셨는지 '분 보 후에'를 먹겠냐? 고 간단하게 물어보신다. 고마울 뿐이다.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주문하지 않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쌀국수가 제공되었다.
이 쌀국수는 넣어 먹는 채소류 종류도 많고 더 푸짐한 것 같다. 사실 분 보 후에의 단점 하나는 채소를 많이 넣어 먹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국물이 금방 미지근해진다는 점이다. 국물은 더워도 뜨끈 뜨끈 해야 맛인데... 조금 먹기 시작하니 아주머니가 다가와 고추기름을 넣어 먹어야 맛있다고 조언을 주신다.
이 좋은 음식을 주변에 놔두고도 처음 몇 마디가 겁(?)이 나기도 하고, 혼자 들어가서 먹는 것도 뻘쭘하고, 그렇다고 직원들을 불러 같이 가기는 좀 그렇고 해서 이제야 시식을 하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하는 성격인데 베트남 현지인들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직도 서툴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 그 식당에선 한 번 먹어 보았으니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퍼(Phở )라고 하는 쌀국수는 하노이 지역에서 시작된 베트남 여러 쌀국수들 중에 하나인데 우리에겐 대표 명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쌀국수의 종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1. 퍼 ( Phở )
베트남의 가장 대표적인 쌀국수로, 북부 하노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맑은 소고기(Phở bò) 또는 닭고기(Phở gà) 육수에 얇은 쌀국수 면과 고기, 허브 등을 넣어 먹는다. 남부 지역의 퍼는 하노이의 퍼보다 조금 더 달콤하고 진한 육수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2. 분 보 후에 ( Bún bò Huế )
중부 후에 지역에서 유래한 소고기 쌀국수로, 진하고 매콤한 국물과 소고기, 돼지고기, 각종 허브와 함께 나오는 것이 특징이며, 고유의 매운맛과 깊은 육수로 유명하다.
3. 분 짜 까 (Bún chả cá )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인기 있는 생선 쌀국수로, 생선 패티를 넣은 국물이 특징이다. 신선한 생선과 맑은 국물, 각종 야채가 어우러진 맛을 즐길 수 있다.
4. 분 리우 ( Bún riêu )
토마토 베이스의 국물에 게살 또는 두부, 토마토, 허브 등이 들어간 쌀국수이다. 남부 지역에서 많이 먹으며, 토마토 덕분에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5. Hủ tiếu (후 띠우)
남부 베트남에서 즐겨 먹는 쌀국수로, 달콤하고 진한 육수가 특징이다. 돼지고기, 해산물 등을 고명으로 올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제 사소한 일에도 용기를 내봐야겠다. 베트남에 살면서 베트남 사람을 만나는 것에 용기를 내어야 한다는 점이 부끄럽지만, 그래야 내 입이, 뱃속이 흐뭇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