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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Oct 08. 2024

기독교 왜 베트남에서 맥을 못추나

발전 과정과 정치적, 문화적인 원인 분석

 베트남에서 종교는 다양하며, 불교, 가톨릭, 전통 민속 신앙, 그리고 자국의 토착 종교들이 혼합되어 있다. 종교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트남의 종교 구성 비율을 살펴보면 불교(Buddhism)가 약 12-15%를 차지하며, 특히 남부와 중부 지방에서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가톨릭 (Catholicism)이 약 7-8%를 구성비를 갖는다. 주로 북부와 중부 지방에서 신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호찌민시와 같은 대도시에도 큰 가톨릭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셋째는 호아하오교 (Hòa Hảo Buddhism)로 약 1.5-3%를 차지하는데 이 종교는 베트남에서 발생한 불교 계열의 민족 종교이다. 메콩 델타 지역에서 주로 신봉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의 자비와 검소함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넷째는 까오다이교 (Caodaism)로 약 1-2%의 구성비를 차지한다. 베트남 남부에서 창시된 종교로, 다양한 종교적 요소들을 통합한 독특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불교, 도교, 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요소까지 융합된 혼합 종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베트남 사람들이 따르는 종교는 전통 민속 신앙이라 할 수 있겠다. 전체 인구의 약 45%가 차지한다고 한다. 이 전통 민속 신앙은 조상 숭배와 다양한 영적 의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회 전반에 걸쳐 여전히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공식적인 종교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베트남의 일상에서 조상과 신령에 대한 예를 갖추는 문화는 매우 중요하며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나머지 약 20-25%가 무신론과 무종교로 분류되는 데, 사회주의 정권의 영향으로 인해 종교를 공식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며, 베트남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규정한다고 한다. 

베트남 중부 달랏의 교회 외부 전경

베트남 중부 달랏의 교회 외부 전경

 위의 정리를 보면서 많은 독자들이 의아해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믿는 사람이 없는 거야? 베트남 정부에서 개신교는 못 믿도록 규제를 하는 거야? 진정 베트남 시민들의 정서에 맞지 않아 자생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가? 하는 등등의 의문이 들 것이다. 

 베트남에서 개신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에서 개신교가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영향력이 미미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가톨릭은 16세기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고,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큰 성장을 이루었다. 프랑스 식민정부는 가톨릭을 적극 후원했으며, 베트남 내에서 가톨릭 교회의 지위를 강화시켜 주었다. 즉, 베트남 가톨릭 교회는 여러 세대에 걸쳐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그 결과 베트남 사회의 주요 종교로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20세기 초에 베트남에 도입되었다. 특히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남부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던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파가 늦게 되었으면 무엇보다 주로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대규모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두 종교의 초기 베트남 진입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정권의 두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가톨릭은 남베트남 정권 시절 응오딘지엠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다. 이 시기에 가톨릭 신자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며 가톨릭의 사회적 지위가 강화되었다. 반면, 개신교는 남베트남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했고, 그로 인해 정치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했다.

 또한 북베트남(공산주의 정권)과의 관계에서도 가톨릭이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었다. 북베트남 정권은 가톨릭을 탄압하긴 했지만, 개신교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신을 받았으며, 특히 미국 선교사들과의 연관성이 북베트남 정권에서 개신교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는 오랫동안 종교를 경계해 왔지만, 특히 개신교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가톨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연결되어 있어 비교적 공산 정권과의 협력 관계가 발전해 왔지만, 개신교는 미국과의 연관성 때문에 베트남 정부의 경계를 받아왔던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개신교는 주로 베트남의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전파되었다. 이는 개신교의 확산을 크게 제한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베트남 내에서 소수 민족은 주류 인구에 비해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개신교는 베트남 전역에 걸쳐 대규모 확산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개신교는 남부 지역, 특히 고산 지대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개신교가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확산을 이루게 했고, 도시나 베트남 주류 인구 사이에서 개신교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실제로 소수민족에 확산된 개신교는 월남 전쟁 이후 직접적인 제재나 통제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 정부는 서구 세력과 연관된 종교들을 대상으로 여러 제재를 가했으며, 개신교 교회들 또한 압수되거나 파괴되었다. 특히 남부와 중부 고원 지역의 개신교 교회들이 주요 타깃이 되었는데, 이 지역은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며 개신교 신자들이 급증한 곳이다. 중부 고원(Central Highlands) 지역은 개신교 신자들이 많았지만, 정부의 감시와 억압이 매우 심했다. 특히 몽타냐드(Montagnard)와 같은 소수 민족이 개신교로 많이 개종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억압은 더 심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점차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1년, 베트남 정부는 남부 베트남 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of Vietnam South, SECV)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개신교 활동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 민족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이어졌다. 이러한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면, 자라이 지역의 개신교도에 대한 억압(1975-2000)을 들 수 있다. 1975년 남베트남이 붕괴된 후, 새로운 공산 정부는 특히 중앙 고원 지역에 있는 종교 단체들, 특히 개신교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탄압을 시작했다. 자라이(Gia Lai) 지역에서는 몽타냐드(Montagnard) 소수 민족 사이에서 개신교가 급격히 성장했지만, 정부는 이들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의 동맹으로 의심했다. 당시 1975년부터 1999년 사이, 자라이 지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수가 432%나 증가했는데, 이러한 성장은 현지 당국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정부는 교회 재산 몰수, 종교 지도자들의 구속, 종교 집회 제한 등의 억압적인 조치를 취했다. 지방 관리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정부 관리들보다 지역 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베트남 북부의 흐몽(Hmong)족에 대한 탄압사례이다. 흐몽족은 1980년대부터 대규모로 개신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약 1,000명만이 개신교 신자였으나, 이 숫자는 2011년까지 170,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빠른 종교적 확산은 정부와의 갈등을 초래했고, 많은 흐몽족 개신교 신자들은 괴롭힘, 임의 구속, 신앙 포기 강요 등을 당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흐몽족 개신교 신자들은 특히 외딴 산악 지역에서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다. 개종한 마을 전체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집을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조치는 종종 지방 관리들이 소수 민족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결국 베트남의 개신교는 소수 민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그 확산은 정부의 강력한 감시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는 비공식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 집회가 많다. 베트남 정부는 종교 활동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종교 단체들에 대해 불신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는 작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서 위축되게 되는 것이다. 종종 베트남 정부는 개신교 집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억압하려는 경향을 보였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개신교는 단일한 국제 조직이 없고, 다양한 교파로 나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분산성 때문에 베트남 내 개신교는 가톨릭처럼 국제적 차원에서의 통합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개신교가 베트남에서 성장하는 데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신교가 베트남에서 성장이 더딘 가장 큰 이유로 공동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가톨릭은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사회적, 문화적 공동체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교육과 사회 복지 활동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 공동체를 사회, 공동체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해 나가면서 내부적으로는 서로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외부적으로도 베트남 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베트남 내 일부 사람들은 개신교를 서구 제국주의와 관련된 외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이후 개신교가 미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남아 있어, 일부 베트남인들은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개신교는 베트남 주류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한 사회 공동체라는 의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베트남 시민들에 확산시키는 데에는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에서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는데, 이는 역사적 도입 시기, 프랑스와 바티칸의 지원, 정치적 보호, 정부의 종교 정책,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의 차이 등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가톨릭은 이미 베트남 내에서 주류 종교로 자리 잡으며, 특히 프랑스 식민지 기간 동안 교육, 법률, 행정 등을 통해 베트남 사회의 주요 문화적, 정치적 구조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월남 전쟁 이후에도 국가의 구성원의 일부로 빠르게 변모하여 흡수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개신교는 특정 지역과 소수 민족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베트남 전체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개신교와 신도들이 가 가지고 있는 우월의식과 배타성에 기인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평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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