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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이 전도된 한국의 제사 문화

한국과 베트남의 제사 문화 비교

by 한정호

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사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조상을 기리고 후손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중요한 의식으로 기일 제사를 지내지만, 제사를 준비하는 방식과 상차림의 구성에는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두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형성된 것이며, 제사를 대하는 방식과 전통 속에서 드러난다. 한국과 베트남의 제사 문화를 비교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두 나라 모두 조상이 죽은 날인 기일에 제사를 지내며, 이를 통해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고 가문의 연결을 지속하려는 의식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제사를 통해 조상의 영혼을 기리고, 가족 간의 연대와 전통을 이어 나간다. 특히 제사 음식과 절차를 통해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며, 제사 자체가 매우 중요한 가족 행사로 여겨진다. 베트남에서도 제사를 지내며 조상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제사를 통해 조상의 영혼이 가족과 계속 연결된다고 믿는다. 베트남의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조상의 영혼이 집에 내려와 후손을 돌본다는 믿음이며, 조상 숭배는 베트남 문화의 중심에 있다.


두 나라 모두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중요하지만, 음식의 종류와 배치 방식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우선, 한국의 제사상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편이다. 홍동백서(붉은 음식은 동쪽, 흰 음식은 서쪽)나 어동육서(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와 같은 엄격한 규칙을 따르며, 제사 음식은 탕, 나물, 전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한다. 그중 국이나 탕은 조상의 영혼을 따뜻하게 대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베트남의 제사상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쌀밥, 국수, 고기(삶은 닭고기나 돼지고기), 과일(바나나, 용과 등), 그리고 찹쌀떡(찐) 등이 제사상에 주로 올려진다. 제사상에 숟가락이나 국물 요리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처럼 엄격한 배치 규칙은 없다. 향과 술은 필수적으로 포함되지만, 상차림의 형식보다 조상을 기리는 진심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z5526265669082_71a6b8aff47c9280a3b1dcbe06867df9.jpg Tet 기간 중 조상님께 올린 제사상


베트남의 제사상에서 발견되는 큰 차이중의 하나는 숟가락과 국물 요리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제사상에 탕이나 국이 반드시 포함되며, 이는 조상을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국물 요리가 제사상에 자주 올라가지 않으며, 고체 음식이 중심을 이룹니다. 숟가락 역시 베트남의 제사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도구이다.


양국의 제사상을 비교해 보자면, 한국은 제사에서 다양한 음식을 통해 조상에게 극진히 대접하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제사 음식의 배열과 규칙도 매우 중시하는 반면, 베트남은 음식의 종류나 배열에 얽매이지 않고, 조상을 기리는 마음과 진심을 더 강조한다.


두 나라 시민들이 유교, 불교, 민간 신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조상에 대한 존경이나 연결 등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 의아함을 느껴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한국의 제사 문화는 특히 조선 후기에 주자학(성리학)이 깊이 자리 잡으면서 형식이 중요시되었다. 제사 음식의 종류와 배치, 절차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었고, 이러한 규범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의 제사는 형식적인 규범이 비교적 적으며, 가족의 전통과 지역에 따라 유연하게 진행된다.

실제로 한국의 전통 제사는 형식과 절차를 매우 중요시하며, 음식의 준비와 상차림에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제사상의 배치 또한 규칙에 맞게 엄격하게 준비되며, 절차를 통해 조상을 대하는 예의를 표현한다. 반면 베트남의 제사는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되며,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규칙이 중요시되지 않는다. 제사상은 간단하게 차려지며, 조상을 향한 진심과 감사의 마음이 핵심인 것이다. 한국처럼 음식 배치나 상차림의 규칙이 엄격하지 않으며, 가족의 전통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은 원래부터 베트남과 구별되게 음식 차림이나 배치 그리고 진행방식에 엄격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토착 신앙이 혼합된 형태의 제사 문화가 존재했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유교적 조상 숭배와 제사의 중요성도 인정되었다. 고려시대의 제사는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탕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이루어졌으며,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의미를 중시했다.

조선 왕조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유교의 예법을 따랐지만, 세종대왕 시기까지는 제사가 실용적이고 간소하게 이루어졌다. 세종은 효를 중요하게 여겼으나, 지나친 형식주의를 지양하고 백성들이 부담 없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장려했다. 제사 음식은 간단했으며, 가족 단위에서 조상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종실록에는 제사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제사는 비교적 간소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형식보다는 진심으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중요한 요소로 여겼던 것이다.


제사상과 제사를 지내는 절차에 차이가 나는 것은 두 나라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유교, 불교, 전통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한국은 조선 후기 주자학이 강화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제사가 형식에 중점을 두고 발전해 왔다면, 베트남은 보다 자유롭고 실용적인 제사 문화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나라의 제사상을 비교하면서 약간의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형식이 내용을 주도해 버린 것은 아닐까?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닐까?

한국은 1인당 명품 소비가 매우 높아, 인구 대비 명품 소비율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국 관광객들이 짝퉁 시장을 필수코스로 찾아다니는 모습이 또 '주자학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니 찜찜하다.


정화수.png 신령님께 기원을 드리는 이미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속에서, 어머니들은 정화수 한 그릇을 올리고 신령님께 기도드렸다.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모습이다. 정화수 한 그릇은 어머니의 순수한 마음과 간절한 기도를 담아낸 상징이다. 이 모습이 제사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명함.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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