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의 현실에서 보이는 친화적인 인간 관계
이제는 한국에서 ‘이웃 사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반면 베트남에선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날 정도로 이웃과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환대하고 친한 척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오거나 안겨서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 아이들을 보면 한국말로 “안녕! 아이 이뻐라” “안녕 또 봐요”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반기곤 한다. 그러면 엄마들은 아이에게 “삼촌 안녕하세요” “삼촌” 이라며 배곱인사를 가르치며 내게 인사를 시킨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같은 층에 사는 아이들은 나를 보면 반가와 달려와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도 한다. 한 번은 아이들이 갑자기 아파트 안으로 들어 오려고 해서 당황한 적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들도 오갈 때마다 “출근해?” “이제 퇴근해?”라면서 항상 인사말을 건넨다. 나도 이젠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서 길에서 처음 사람이라도 얼굴이 마주치고 웃으면 서로 인사를 한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 와서 건, 길에서 마주칠 때 나를 보고 “안녕 Mr. HAN”이라며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었다. 한국 고객들 중에서도 성을 잘 몰라 그저 직책을 부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베트남 사람들에겐 이름을 외우고 친숙하게 인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낸다. 외국인도 안다. 라는 식의 일종의 과시라고나 할까? 아니면 베트남 사람들간에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할까? 그들 끼리도 항상 이름을 부르면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거나 소개를 받게 되는 경우 십중팔구는 형이라거나 심지어는 아버지라고도 한다. 한 번은 사업과 관련해서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 아버지라고 하면서 아버님 집에 가서 소개를 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끌고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듯 해서 몰래 진짜 아버지 맞냐고 조용히 물어 보니, ‘양 아버지’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자기가 아버지처럼 모시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勢를 불려서 자기를 포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 돕고 화기애애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너무 보기 좋기도 하고 한국의 60~70년대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그리움이 들 때도 있다. 설이나 추석 때면 사촌을 포함 모든 가족들이 모여 옹기종기 몸을 부딪히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 무리는 밖에 나와 놀이를 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한국도 옛날에 그랬듯 지금 여기서 ‘이웃 사촌’이 행동을 구속하는 경우도 있다. 무슨 일이 하나 벌어지면 그 다음 날 모든 사람들이 알아 버리는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내게 “고양이 돌아왔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어제 누구와 어디서 술을 먹었지? 취한 것 같더라” 라며 웃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감시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의심의 한 편에는 이 곳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고 주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을 느낀 적도 있다.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정이 느껴지는 생활이 가능한 곳이 베트남인 것 같다. 뉴스에서 주차문제로 싸움이 벌어졌다거나,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사건으로 번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각박해진 한국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