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능일
일 년에 단 하루, 비록 몇 분일 지언정 국제선 외국 항공기를 포함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대학교 진학평가을 위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듣기 능력평가 시간으로 통상 오후 1시 10분에서 1시 35분 사이에 25~30분 정도 전국 공항에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정지되는 것이다.
필자도 3년 동안 같이 생활해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날 만큼은 챙겨주고 싶어 베트남에서 한국에 비행기를 타고 올 정도이니 대단한 날 임은 분명하다. 반에서 몇 등을 하던, In Seoul에 지원을 하든 말든. 그냥 이 시험 자체를 치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소중한 날이다.
어제저녁 아이들 저녁을 사 먹이겠다고 하고 자리에 나가니 누나가 자기 경험을 살려 우황청심환 같은 약을 주었는지 지금 한 번 먹어보고, 효과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내일 아침에 꼭 먹으라고 설명을 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저런 게 오누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딸 아들 모두 착하고 이쁘게 잘 자라주었다는 생각과 감사함이 절로 생겨났다.
저녁을 함께 하고 나는 차를 몰아 시험장소인 학교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내가 살던 목동 주변의 양천구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아들은 얼마 안 걸린다고, 혼자 가도 된다고 하고 딸아이도 안 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만약 혼자 드라이빙을 하다 일방차선에서 길을 잘못 들어가면? 혹시 와이프가 옆 자리에 타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에 수능장 문 앞에 아들을 데려다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5시 30분. 다신 한 번 눈을 감았다가도 잠이 오지 않는 듯하여 이부자리를 개고 집을 나섰다. 딸이 있는 오피스텔에 먼저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자주 들르던 사찰이 있어 경내로 들어갔다. 법당까지 올라가긴 그렇고 해서 법당 앞에 차려진 발원 촛불대에 향을 붙이고 기도를 하였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공부한 실력을 차분히 시험해 볼 수 있기만을.
아들이 있는 아파트로 가니 제 엄마가 보자마자 내게 어느 길로 가야 하느니...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통상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 30분이 잡고 먼저 간다고 하였는데 두 아이들의 요청으로 15분을 늦춰 출발을 하는데 출발 전부터 실랑이가 벌어질 듯했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딸아이가 와 준 것인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27분 만에 간 경로인데 도착예정시각을 보니 거의 두 배 가가운 시간이 소요된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벌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딸아이는 '시간 충분하니 걱정 마세요'라며 자기 핸드폰으로 네비를 켜 놓고 내 것과 맞춰보면서 경로가 같으니 걱정 마시라고 한다. '경로가 같은데 이리 시간이 밀리면 도로 정체인데...'라는 생각 하니 머리가 쭈뼛해지는 것을 느꼈다. 푸른색 신호등에도 앞선 차량이 세 대 정도만 넘어간 걸 보면 분명히 이 도로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조금 앞으로 더 나아가고 보니 그 지역이 인공 터널 전에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 앞에 아들의 성실한 시험 수행을 기원하면서 딸과 아들을 내려주곤 쫓기듯 앞으로 밀려 나갔다. 딸아이는 아들 수능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면 아빠가 돌아오겠다고 하고 앞으로 나아갔는데 돌아오는 데에만 20여분이 걸렸다. 좁은 2차선 도로 전체가 학부모들의 차량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전하게 입실 완료 전 30분에 도착하게 하였으니 나의 아침 업무는 끝마친 셈이다. 딸아이도 지쳤는지 아침을 사줄까?라고 물으니 그냥 빨리 들어가 자고 싶다고 했다.
마을 목마도서관에 들어와 일정과 글을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즐겨 찾던 짜장면 식당을 갔는데 벌써 점심을 드시러 온 손님들이 꽤나 있다. 혼자 자리를 차지하는 게 조금은 미안해서 짜장밥과 만두를 시켜 먹고 나니 이제 잠이 쏟아지려 한다. 다시 도서관을 나왔다. 파리공원 옆에 법안정사와 목동 성당을 둘러볼 요양이었다.
법안정사는 현대식 도심 사찰로, 1989년 한불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곳으로, 사찰은 2층에 종무소와 관음전, 3층에 요사채, 4층에 법당이 있으며, 경내에는 범종각과 사적비가 있는 곳이다.
법당 안은 신도들로 가득했다. 방금 큰 스님의 법회가 끝났는지 우르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법당을 빠져나오는 사람들과 반대로 나는 들어가 세배를 하고 우리 아들이 시험문제에 놀라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공부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사찰을 나오려 하는데 학부모처럼 보이는 아주머니 넷이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들린다.
"여기서 절밥을 먹어야 효과가 있나 봐! 우리도 먹으러 가자!"
"부처가 죽은 지가 언젠데!"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하더니 결국에는 다시 계단을 올라 식당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첫 번 째 말한 사람은 분명 오늘 자식이 지금 수능시험을 치르고 있을 것이리라. 내 입가에 표현하기 어려운 미소가 생겨났다. 부모의 애절한 자식 사랑이라고나 할까? '먹어보지도 않던 절밥을 먹어야 하나?'라는 고민과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을 함께 불러 가자고 하는 용기 그리고 그 친구를 위해 따라나서주는 배려... 모든 것이 부모의 마음이리라.
파리공원을 따라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에도 많은 신도들이 미사나 기도를 드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뜻 밖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관계로 성당 안으로 마구 들어가는 것은 주저스러웠다. 외부 경관을 보고 있자니 한 두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한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듯 왁자지껄하다. 조심스래 1층으로 들어가 보니 식당 같은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오늘 같은 날 종교 구분이 어디 있을라고!'
오늘은 무신론자, 불교도, 기독교도, 천주교 신도, 원불교 신도.... 모두가 정말 하나만 바라보는 날일 것이다. 자기 자식의 수능 시험날. 자기가 대신해줄 수은 없고 신에게 기원할 시간 없는 자식을 대신해 기원하는 날.
이제 마지막 교시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마치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