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댈 사람은 없는데 혼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지갑
한국의 본가에 와서 달러가 들어 있는 지갑을 안방의 화장대 위에 올려 놓았다. 어제 저녁 짐을 정리하다가 지갑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어머님이 지갑이라 생각하시고 다른 곳에 넣어 두셨나 싶어 지갑을 다른 곳에 치워 놓으셨나고 물어보니 파우치 백은 보았는데 옆에 놔 둔 지갑은 보신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사이 아버님이 다가오셔서 뭘 찾는지 물어보신다. 여기 지갑 2개를 올려 놓았는데 오늘 일을 보고 돌아봐 보니 없어진 것 같아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난리간 났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었냐?"
"어제 누가 집에 왔다 갔었지?"
"미영이는 와서 안방에 들어간 걸 못 봤는데, 봤더라도 다른 곳에 옮길 리는 없다. 미경이는 집에 들어 오지도 않았고...."
어머님이 거드신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청소를 해도 그걸 다른 곳으로 옮기실 분은 아닌데...."
"정호야 난 파우치 옆에 뭐가 있엇던 것 같긴한데. 지갑이 두 개라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제일 먼저 치매에 걸린 사람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안 가져 왔는데 기억 못 하는 것 아니니? 아니면 오늘 낮에 가방에 넣고 갔다가 어디다 놓고 온 것은 아니니?"
타고 나가지도 않은 차안에 있을 지도 모르니 가서 보고 오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내려와 차량 안을 살펴 봐야 했다.
지갑을 움직인 사람은 없는데 물건이 없어진 건, 네가 안 가지고 온 것 아니냐면서도 괜히 내 가방을 또 다시 뒤져보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집에 있기는 하다. 혹시 어머님이 지갑을 보시고는 돈도 들어 있는데 다른 곳에 넣어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옮겨 놓고는 그만 까먹은 게 아니신가?'
어머님이 치매가 걸린 것이다.
아버님은 난리가 났다.
돈도 들어 있고, 면허증도 들어 있다면, 그런 중요한 걸 왜 따로 보관하지 않고 그런 곳에 그냥 올려 놓았냐?!며 질책이 담긴 말씀도 하신다.
아버님도 어머님이 의심이 되는 지, 당신 방에 있던 것이면 보았을텐데, 정리하면서 옮겨 놓은 것은 아니냐고 하시자 어머님이 안절부절이시다. 안방의 서랍들이 모두 까뒤집어졌다.
12시가 넘었다.
"분명이 여기 가져와서 올려 놓은 것은 맞고, 집 안 어디에 있을거예요. 주무시고 나면 내일 아침에 갑자기 제가 어디다 옮겨 놓았는지 생각이 날 수도 있고, 엄마도 생각이 또 날 수도 있으니 주무지죠"라고 하고 일부러 불을 끄고 누워 있는데 안방에서는 계속 딸그닥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님이 다가 오신다.
마지막으로 아버님이 치매에 걸리셨다.
어머님이 "어쩌면 아버님 중요 서류 가방에 들어 있을 수 있겠다. 네가 오늘 인감과 서류 찾아가고 할 때, 거기에 넣어 놓으시고 잊어버릴 실 수 있겠다. 오늘 저녁에 네가 인감과 서류 넣어달라고 돌려 드렸는데 책상위에 보니 아직 그게 그대로 있으니 아침에 넣으시다 보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라는 말씀이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어머니를 달랬다.
"분명히 집 어딘가에 있을거예요. 걱정마시고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한 번 찾아 보시지요"
아침이 되었다. '두 분의 표정이 어떨까?'하면서 걱정이 앞서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방에서 지갑 2개를 들고 나오신다.
"이거가?"
바로 대처를 했다.
"아! 맞네요. 어제 제가 인감이랑 서류 달라고 할 때, 이것들 거기에 넣어 달라고 했는데 제가 까먹고 있었나봐요"
"아.... 난 이 지갑들을 여기 가방에 넣은 기억이 없는데..."
"아니예요. 있으면 됐죠! 제가 아빠에게 맡긴 걸 깜박 했나봐요. 급하게 인감, 서류 받고 나가느라.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가 아버님께 맡긴 걸 기억 못했고, 아버님은 그 때 가방에 넣으신 걸 기억 못하신 것으로 정리하였다. 모두가 최소한으로 불편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인 듯 하다.
그래도 마음이 씁쓸하다.
어머님은 화장대 위르 몇 번 정리를 하시면서도 파우치를 열어 여권이 들어 있는 걸 보셨다면서도, 옆에 있던그 두툼한 지갑 2개를 못 보셨다는 말씀에 치매가 아니라면...
아버님 가방에 들어 있는 지갑을 넣은 기억이 없으시고, 두 사람을 닥달 하시는 걸 보면 이것도 치매의 증상?
정말 나도 지갑을 아버님께 맡겼는데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면 나도 치매?
마음 씁쓸한 지갑 분실 헤프닝이다.
그래도 누님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모두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 우리 세 명의 마음으로 위로를 한다.
내 행동에 좀 더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