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의미의 유교적 가치가 뿌리내린 사회였던 적 없었던 종주국, 중국
언론에서 중국인들의 민폐 행동과 예의 없는 태도가 구설수에 오른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사례들을 굳이 언급하거나 팩트 체크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사실이다.
'어쩌다가 저렇게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베트남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글로 써오면서,
"베트남도 유교의 영향을 받은 국가로서…"
"한중베 삼국의 유교 사상의 영향…" 이런 표현들을 자주 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문득 떠올랐다. '중국이 유교의 종주국 아니었나? 문묘와 국자감 같은 당당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 중화사상을 강화하는 데 유교를 이용했던 그 중국. 스스로 유교 종주국임을 자랑하던 그 중국 맞잖아.'
오늘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교가 중국에 뿌리내린 적이 없으니 사라질 것도 없는 것 아냐?.'
'정말 유교 종주국미 맞나?' 라는.
중국을 '유교 종주국'이라고 부른다.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나라,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인(仁)과 예(禮)를 강조했던 철학이 나왔고, 이후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끼쳤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의문이 생긴다.
정말 중국이라는 나라가 백성들 일상까지 유교적 예절과 덕목이 스며든, 그런 사회였을까?
1. 유교는 철학이었다, 백성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자가 활동했던 기원전 500년경, 유가는 하나의 학문, 사상으로 출발했다. 권력자에게 '이렇게 다스려라', '백성을 사랑해라', '덕으로 통치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법가(法家)의 강한 통제가 더 효과적이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 법가는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되었고, 유가는 거의 사라질 뻔했다.
그 후 한나라(기원전 200년경)가 등장하면서 유교가 다시 국가 이념으로 채택됐지만, 이것도 '유교적 명분을 앞세운 통치 전략'에 가까웠다. 왕과 관료들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덕을 강조하고, 제사를 중시했지만, 정작 일반 백성들의 삶은 농사짓고 세금 내고 군역에 끌려가는 고단한 연속이었다. 평범한 농민과 상인, 노동자들까지 유교적 예절을 지키며 살았던 사회는 아니었다는 거다. 국가에서 요구하는 건 효(孝), 충(忠), 순종이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백성은 황제를 섬기라는 구조였다. 즉, '예'는 권위와 통제를 위한 수단이었지, 사람 사이의 존중과 배려의 문화로 내려오지는 못했다.
2. 송나라에서는 형식만 남고, 명·청에서는 과잉되었다
송나라(960~1279) 때 주자가 등장하면서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유교가 정교하게 재정비된다. 가부장적 질서, 남존여비, 강한 위계질서를 강조한 이론들이 이때 탄생했고, 이후 조선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유교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경직된 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을 치를 때 몇 년을 상복을 입어야 하고, 절을 몇 번 해야 하고, 여자들은 몇 걸음 이상 나가지 말아야 하고, 이런 규칙들이 중요해졌다.
명나라와 청나라로 이어지면서도 이 분위기는 더 강해졌고, 부패한 관리들은 유교적 명분을 앞세워 백성들을 수탈하고, 왕조는 겉으로만 덕을 강조하면서 내부는 부패가 극에 달했다. 결국 유교는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진 시기였다.
3. 근대 혼란과 문화대혁명, 유교의 파괴
19세기 들어 중국은 아편전쟁(1840년대)과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급격히 무너졌다. 태평천국 운동, 의화단 운동, 신해혁명 등 끊임없는 내란이 이어졌고, 청나라는 붕괴했다. 이 과정에서 유교는 이미 힘을 잃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민심은 황폐해졌고, 나라를 팔아먹는 대신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만 득세했다.
결정타는 1960~70년대의 문화대혁명이었다. 마오쩌둥은 "옛것을 모두 파괴하라"며 유교와 공자를 적폐로 몰았다. 공자의 사당이 불탔고, 유교 경전은 폐기됐고, 효, 충, 예 같은 가치들은 '낡은 봉건 유물'로 공격당했다. 부모를 밀고하고, 스승을 때리고,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혁명 정신이던 시절이다.
이후 중국은 경제 개방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문화적으로는 텅 비어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돈, 성공, 권력, 생존뿐이었다. 거기에 인구 14억의 경쟁, 도시화, 빈부격차, 교육열 등이 더해지면서, '예절'은 사라지고 오히려 '강자에게 복종, 약자에게 군림'하는 문화만 남았다.
중국은 분명 유교의 종주국이다. 공자와 맹자의 나라이고, 수천 년 동안 '예(禮)'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민족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 반대다. 아나무인에, 이기적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라곤 전혀 없는 태도. 식당이건 가게건, 공공장소건 어디서나 이런 모습을 쉽게 보게 된다.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과연 저들은 유교를 제대로 문화로, 생활로, 정신으로 뿌리내린 적이 있었던 걸까?"
혹시 유교는 권력자들의 통치 수단이었고, 겉으로만 유지된 가짜 문화 아니었을까? 진짜 정신은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았던 건 아닐까?
결국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모습은 '유교 종주국'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그저 권위와 위계질서, 형식적인 절차만 강요했을 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존중하는 진짜 예절과 도리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아직 유교적 정서가 남아 있는 베트남에 대해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이 곳엔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