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기후 속 재미있는 이야기
바리아 붕따우성, 푸미시의 어느 오후, 태양은 가만히 있어도 등을 태울 듯 강렬하다. 나는 매장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앉아 있는데도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아... 너무 덥다. 비 좀 오면 좋을 텐데. 짱(Trang) 여기 제부터 비가 오지?" 라고 매장안에 있는 매니저에게 물으니,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비가 오기를 바래요? 비가 오면 좋다고? Mr.Han이 아직 베트남을 잘 몰라서 그래."라고 답한다.
나는 얼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되물었다.
"왜? 이 날씨엔 비가 한 번 내려줘야 시원해지지 않을까?"
그 순간 가게 직원인 린(Linh)이 웃으며 대화를 거들었다.
"하하, 비가 내리면 오토바이 타기도 힘들고, 길이 미끄러워져서 사고도 많아요. 특히 당신처럼 우산도 쓸 수 없이 자전거를 타야하는 사람은 더 힘들걸요? 오토바이도 없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이렇게 덥고 습한 것보단 낫지 않아?"
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린(베트남 사람들) 건기가 훨씬 좋아요. 비가 오면 장사도 안 돼. 거리에 사람이 확 줄어들고, 우비 쓰고 다니는 것도 짜증 나거든요!!."
린도 맞장구쳤다.
"맞아요. 비가 오면 가게 앞에 손님들이 우산 들고 서 있거나,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길 기다리는데... 그게 10분이면 괜찮은데, 한 시간 넘게 안 그치면 장사도 제대로 못 하잖아요. 사장님이 비 오는 걸, 더 싫어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주방에서 머리를 빼꼼 내민 주방장 투에이(Thuy)가 끼어 들었다.
"Mr.Han은 비 내리길 기다리는 사람이지? 우리는 비 오면 속상한 사람들이야."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왜?"
"건기에는 관광객이 많고 장사도 잘 돼지만, 우기가 되면, 갑자기 비가 퍼부으면 손님들이 약속을 취소하거나 밖으로 나올 생각을 포기하고 그냥 집에 있잖아요. 우리에겐 건기가 더 좋은 거예요."
수긍이 갔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럼 농부들은? 농부들에겐 비가 필요하지 않나?"
그제야 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비가 안 오면 벼도 말라버리고, 과일도 작게 자라거든요. 우리 집도 예전에 두리안 농사를 했는데, 우기가 너무 늦게 오면 수확이 잘 안 됐어요."
주방장 투에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농부들은 비가 오면 'Mưa này là vàng' (이 비는 금이다)라고 말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도시 사람들은 '이 햇빛이 금이다'라고 해야겠네?"
짱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에게는 해가 떠야 돈이 들어오니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건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우기를 기다린다. 나 같은 외국인은 시원한 비가 내리길 바라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비 한 방울이 삶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 순간, 저 멀리 검은 구름이 조금씩 떠오르는 게 보였다. 비구름이 몰려 오는 것이리라.
짱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했다.
"비가 올 것 같네. Mr.Han은 좋겠네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비가 오면 시원해서 좋지만... 오늘 장사 망치는 거 아닌지 걱정되네"
그러자 투에이가 웃으며 짧은 속담을 하나 알려주었다.
"Trời mưa là chuyện của trời." (비가 올지 말지는 하늘의 일이지.)
: 뜻을 살펴보니 비가 오든, 해가 뜨든, 그건 결국 베트남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하늘의 일일 뿐,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억센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가게 앞을 지나던 오토바이 커플이 하나의 우비(판쵸)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뒷자리 여성이 앞사람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짱이 그 장면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봐요, 비가 오면 연인들이 더 가까워진다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은 오토바이 커플들이 더 달라붙을 수밖에 없겠네."
투에이도 농담을 덧붙였다.
"Trời mưa là dịp để tỏ tình" (비 오는 날은 고백하기 좋은 날이지)라고.
비가 오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곳 베트남 남부 사람들은 그 어떤 날씨에도 유쾌하게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가 아침과 저녁시간 전에만 내려주길 바라는 내 욕심은 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