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가 아니고 고문관이었슴을.
한동안 나는 내가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샤워를 하고 거울앞에서 물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똥배를 보곤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한 열흘이 되었을까? 식단을 조절하면서 깨달았다. 이전의 나는 그냥 내 위와 다리에 대한 고문관이었다는 사실을.
회상 1 : “삼겹살이 아니면 밥이 안 넘어가”
일주일에 4~5번 삼겹살.
닭볶음탕, 치킨, 돼지껍데기, 전집, 조개구이까지.
술이 빠지면 예의가 아니었고,
소주병이 쌓이면 그날 하루를 잘 산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선 또 허기.
'어우… 좀 출출한데?'
바로 컵라면에 뜨거운 물 붓고,
“그래도 공기밥 반 공기면 덜 죄책감 들겠지?” 라는 이상한 계산.
회상 2 : "잠은 배불러야 온다"는 괴상한 철학
그때 나는 몰랐다.
잠을 자는 건 뇌지만, 못 자게 막는 건 위라는 걸.
허기 느끼면 잠이 안 온다, 늦은 밤 12시, 심지어는 자다가도 배가 고프면 일어나 뭔가를 꼭 먹었다.
위는 말없이 다 받아줬고, 다리는 그걸 들고 서서 움직였다.
내 위장과 하체는 이미 노예 계약서에 도장 찍은 상태였을 거다.
지금의 나 : "아니, 이래도 버티네?"
이제 저녁은 바나나 하나, 두부 반 모, 토마토, 삶은 달걀.
진짜 이걸로 하루가 끝난다고? 그런데 몸은 괜찮고, 잠도 잘 자고, 아침도 가볍게 일어난다.
지금 생각하니,
내 다리랑 위장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이제야 우릴 존중하네.”
내 안의 장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합니다.
위장아, 미안하다.
널 부풀리고, 또 부풀려서
어느 날은 뚱뚱한 물풍선처럼 만들어 놓고 잤지.
다리야, 고맙다.
그 많은 짐을 들고도 걸어다녔구나.
살 빼면 너부터 가볍게 뛰어 다닐 기회를 줄게.
앞으로는 먹고 마시고 누웠다가 “어우 배불러” 말하는 삶이 아니라,
가볍고 명확하게 살고, 걷고, 숨 쉬는 삶을 살아가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