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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달리는 기차 위에서, 베트남을 만나다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33시간의 철길 여행

by 한정호

요즘은 모두가 빠르다.

빠른 비행기, 빠른 길, 빠른 하루.

나의 지난 베트남 생활도 그렇게 빠른 것 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듯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너무 빨라져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직장생활을 할 당시, 부문장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천천히 운전을 하면고 가야 주변을 볼 수 있다" 빠르게 운전할수록 주변을 살펴 볼 여유도 없어지고, 보는 시야와 생각도 좁아진다는 말씀이셨다.


문득 나는, 베트남 남단의 호찌민시에서 북쪽 수도 하노이까지 가보는 계획을 꿈꿔 보았다.

30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그 느린 철도 위로. 단선 위의 느림, 그리고 풍경


베트남의 남쪽 끝 호찌민에서 북쪽 수도 하노이까지 기차로 이동하면 약 3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30시간이나?” 싶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베트남 철도는 지금도 단선(single track) 이다. 즉, 상행과 하행 열차가 같은 선로를 번갈아 사용하는 구조라서 중간중간 서로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베트남 기차 여행만의 매력이 숨어 있다고 한다. 또한 그 기다림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차는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간다.

창밖으로는 논밭, 산, 바다, 마을…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의 하루가 스쳐간다.


기적 소리, 철컥거리는 선로,

그리고 낯선 도시 이름들.


도시마다 잠깐씩 멈춰가는 여행

이 긴 여정 속에서

기차는 몇몇 도시에서 잠깐, 혹은 길게 멈춘다.


- 나짱 (8~9시간 거리)

해변 도시의 대표주자.

맑은 바다, 머드스파,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빈펄랜드가 인상적이다.


- 꾸이년 (12~13시간 거리)

아직 여행자들에겐 낯선 이름.

하지만 그 고요한 해변과 참파 유적은

오히려 한적한 베트남의 정수를 보여준다.


- 다낭 (17~18시간 거리)

내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 관광객에도 가장 사랑받는 여행 도시중에 하나.

미케비치의 석양, 바나힐의 황금다리,

밤에 불을 뿜는 용다리까지.


- 후에 (20~21시간 거리)

응우옌 왕조의 고도(古都).

향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배와,

무거운 역사가 잠든 왕궁이 있다.


- 동허이 (23~24시간 거리)

세상에서 가장 큰 동굴,

‘선둥’이 있는 퐁나케방 국립공원의 시작점.


- 빈 (27~28시간 거리)

호치민 주석의 고향, 김리 마을 근처.

많은 이들이 스쳐가지만, 고요히 머물러보면 따뜻한 일상이 보인다.


- 하노이 (31~33시간 거리)

종착지이자 또 다른 시작점.

북부 여행의 관문.

구시가지, 호안끼엠 호수, 카페골목,

혼자 걷기 좋은 도시.


사실 꾸이년과 동허이를 빼곤 모두 몇 번씩 가 본 도시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철도 여행을 하게 된다면 베트남이 새롭게 보일 것 같다. 빠르게 지쳐가는 일상이 아닌, 자연스런 베트남의 일상을 잠깐씩 머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베트남에서 살아왔던 모습도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 듯 하다.


침대칸에서 보낼 하룻밤,

기차에서의 밤은 낯설지만 특별하다.

침대칸은 4인실 또는 6인실이 있고,

에어컨이 켜져 있고, 창에는 커튼이 달려 있다.


침대에 누워 흔들리는 리듬을 느끼다 보면

창밖 어둠 속에서 작은 역들이 스쳐간다.

때로는 멀리서 파도 소리,

때로는 누군가의 콧노래.


그렇게 기차는 새벽을 품고 달릴 것이다.


꼭 한 번에 하노이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간별로 기차표를 끊어, 도시마다 내려 발길 닫는대로 걸어보고, 눈에 담고 다음에 노는 기차를 타는 여류로운 여행

이런 식으로 여행을 이어가면, 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여행의 리듬이 되리다.


플랫폼에서 종종 누군가 도시락을 팔고,

차창 밖에선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하루에 두 번, 해가 기차를 스친다.


왜 이 기차를 탔느냐고 묻는다면

빠르게 가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느리게 가니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베트남은 내게 스쳐 가는 나라가 아니라, 천천히, 머물러야 하는 이야기였슴을 확실히 깨닫을 것 같다. 언제쯤에야 실현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너무 빨리만 스쳐 지나간 듯 하다.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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