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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왕이 아니라 방문객이다

타국에서의 기본 예의에 대하여

by 한정호

어젯밤,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중국인 6명이 들어섰다. 밝지도, 조심스럽지도 않은 얼굴. 당당하다 못해 적당히 오만한 태도였다.


직원들에게 무작정 중국어로 말을 쏟아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을 건넸다"는 표현보단 "지껄였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해 못하는 직원들이 당황한 눈빛을 보이자 그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라면을 주문했다. 베트남어는커녕 영어 한 마디도 없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로 말해도 이해되어야 한다는 태도였다.

타국에 와서, 그것도 관광지도 아닌 현지 식당 안에서 저런 모습이라니.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말,

“허... 무례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정복자들의 태도

내가 다가가 중국어로 "뭐 먹고 싶은 거냐"고 묻자, 그제야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나이가 들어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장이란 걸 눈치 챈 걸까. 처음의 당당함은 조금 줄고, 몸짓이 다소곳해졌다. 그래도 이미 그들의 첫 인상은 깊게 각인되어 버렸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제멋대로 자리를 옮겼다. 한 사람, 두 사람... 어느새 옆의 빈 테이블로 이동해 반찬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만의 규칙, 그들만의 세계였다.

그 순간 또 한 단어가 떠올랐다. “호로자식들”


예의란 뭘까?

그들이 특별히 큰 잘못을 한 건 아닐 수도 있다. 언어 장벽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태도라고 생각한다. 미안함이 없다. 조심스러움도 없다. 다른 문화에 들어섰다는 인식도 없다. 타인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의식조차 없었던 것이다.


'혹시 우리도 이런 모습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도 해외에 나가면 종종 큰소리로 말하고, 음식점에서 무례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마치 이방인이 아니라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려는 태도.


손님이 왕일 수는 없다. 특히 여행자는 손님이 아니다. 여행자는 스스로 그 땅의 규칙을 존중할 책임이 있는 ‘방문자’다. 아무리 자기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는다고 해도, 그 공간에서 타인의 문화와 사람을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타국에서는 “왕”이 아니라 “손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님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조용히 앉고, 공손하게 주문하며, 떠날 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그게 기본 예의고, 그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세계 시민 교육’이다.


작은 공감에서부터 시작하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화가 달라도, 그저 ‘조금 조심스러운 미소’ 하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의는 대단한 게 아니다. 작은 배려와 미안함, 그리고 존중이다.


그날 밤의 20대들이 이 글을 본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의 행동을 돌아보게 될까?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외국에서 또 누군가의 식당에 들어설 때, 그 작은 미소 하나를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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