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 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경제
식당에 손님들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인근 마트 주변의 쓰레기통을 들쳐보고 주차장 주변을 살핀다. 손님들이 장 봐오며 챙기지 않은 대형마트 영수증들을 챙기는 것이다. 그 안에 오늘 내가 필요로 하는 세금계산서가 있기 때문이다.
식당 운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채소, 고기 등을 사오는 게 얼마나 복잡한 세상인지. 매일 시장에서 사 오는 거의 모든 원재료는 세금계산서가 없다. “계산서 돼요?” 하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건 이상하다는 표정의 찡그린 얼굴뿐이다. “그거 끊으려면 부가세 따로 내야 돼요.” 또는 “여기 말고 다른 업체 계산서 줄게요.” 식당 사장들끼리는 안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실제로 우리가 받는 세금계산서는 재료를 구입한 곳의 법인이 아닌, 전혀 다른 유령 같은 법인의 이름으로 나온다. 말이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런 식으로도 다 못 채운다. 식당 원재료 대금의 절반 이상은 애초에 세금계산서 자체가 없다. 그래서 남은 방법이 하나다. 쓰레기통 뒤지기.
인근 대형마트는 그나마 희망이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챙기지 않고 가면, 나는 그걸 주워와서 세금계산서로 등록한다. 그런데 그것도 조건이 있다. 최소 금액은 20만동 이상이어야 하고, 영수증 발급일 당일 저녁 10시 이전에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으면 등록이 안된다. 매니저는 상품 품목도 확인하곤 한다. 식당과 상관없는 상품의 구매 내역은 나중에 또 회계감사에서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한낱 종잇조각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 종이 한 장이 한 달 세무신고의 숨통을 틔우는 수단이다. 하루에도 몇 장씩의 영수증을 모아 하나하나 확인한다. "이건 18만동이라 안 되고, 이건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고르고 골라 건질 수 있는 건 서너 장 정도다.
참 아이러니하다. 매월 몇 천만동어치의 식자재를 사지만, 세금계산서로는 불과 몇 백만동에 불과하다.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으면 아마도 우리 식당은 매월 큰 이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많은 세금을 억지로 납부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겪을 때마다 베트남 경제는 여전히 ‘소비자 중심’보다는 ‘공급자 중심’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직도 공급자가 유통의 힘을 쥐고 있고, 소비자는 거기에 따라가는 구조다. 영수증 하나로도 내 세무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나는, 공급자의 논리에 떠밀려 소비자였던 사람들의 흔적을 좇고 있다.
05화 베트남에서 노동은 업무시간에만(파리 잡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