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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 누구에게 쓰시겠습니까?

청년의 첫 월급 사용처를 비교하며 본 ‘감사의 문화’와 '관계의 경제'

by 한정호

입사후 첫 월급.

누구에게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보이고, 그 사회의 문화가 보인다.


예전에 베트남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얻게 되면, 첫 월급을 고스란히 자신을 취업시켜 준 교수님께 드린다는 이야기. 또 친구의 소개로 일자리를 얻었다면, 그 친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첫 월급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솔직히 베트남 '커미션 문화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설마 월급을 전부 다?”

“고마운 건 알겠지만, 이건 좀 과한 거 아닌가?”

한국식 사고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취업을 도와준다고 해서 월급을 통째로 주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도 첫 월급을. 리쿠르팅사를 통해 입사를 해도 취업한 회사에서 비용을 지불하니 첫 월급의 사용여부는 개인의 몫이다. 또한 친구나 교수에게 “수고비”를 따로 주는 문화는 없다.

첫 월급은 대개 부모님께 선물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보상하는 데에 쓰인다. 예컨대, 선물을 사 드리거나 외식을 하거나. 요즘 MZ세대는 ‘셀프 선물’을 한다고 한다. 명품 하나를 산다든가, 여행을 간다든가, 혹은 학자금 대출 일부를 갚는 식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달랐다.

취업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에게 직접적인 ‘감사 표현’을 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전부를 드리는 경우는 줄었지만, 여전히 첫 월급으로 식사 한 끼, 과일 바구니 등을 사서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나 전통적인 가족 문화를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걸 ‘커미션’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이 있고, 그냥 ‘의례’라고 치부하기엔 그 안에 깃든 사회적 메시지가 무겁다. 베트남의 첫 월급은 단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도움 속에서 내게 돌아온 결실을 ‘다시 나누는 행위’라는 느낌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처음 느낀 그 ‘커미션 같음’은, 지금 생각해보면, 베트남의 ‘관계의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판단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베트남 사회는 생각보다 ‘인연의 힘’이 크다. 누가 날 소개해줬는지, 어떤 사람을 통해 그 자리를 얻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한국도 인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베트남은 그 고리를 ‘사회적 부채’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고리에 대한 감사, 혹은 일종의 ‘빚 갚기’가 첫 월급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첫 월급, 문화의 거울

한국 : 나를 키워준 부모님께, 혹은 나에게 선물

베트남 : 나를 도와준 은사, 친구, 소개자에게 감사의 순환


요즘 베트남도 점점 변하고 있다.

대형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더 이상 교수님께 찾아가 직접 봉투를 들고 찾아가진 않는다. SNS로 감사 인사를 전하거나, 모임에서 식사나 커피를 사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을 받았으면 돌려야 한다’는 정서는 남아 있다.


이런 문화가 참 인상 깊다. 이게 커미션 문화인지, 아니면 감사의 구조인지—결국 해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놓치고 있던 ‘감사의 구조’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지극히 개인화된 한국의 첫 월급 문화 속에서 “나는 누구 덕분에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은… 조금 낯설었던 것 같다.


혹시 당신의 첫 월급은 어디로 갔는가?

아니면, 아직 첫 월급을 받지 않았다면, 그 돈을 가장 먼저 ‘누구에게’ 쓰고 싶은가?


그 답변 안에는 아마 당신이 살아온 방식, 그리고 세상이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듯 하다.

그리고 문득 '우리 딸, 아들이 첫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할까?' 그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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