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땅에 묻으면 신령이 찾아온다
베트남 농촌이나 시골을 도로를 지나다 보면 아주 특별한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논이나 밭위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를 믿고 따른다는 베트남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떻게 물이 차는 곳에 묘지를 조성할 생각을 했을까?
베트남에서는 오랫동안 조상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죽은 이를 땅에 묻고 흙으로 덮어주는 매장은, 단순한 장례를 넘어 ‘가족과 조상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지금은 화장이 많이 보편화됐지만, 전통 매장 풍습에는 여전히 의미 있는 절차와 상징이 남아 있다.
베트남 농촌 풍경 어디를 봐도 논·밭 한켠에 자리 잡은 묘지를 만날 수 있다. 풍수지리와는 달라 보이지만, 현지인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통 매장 방식이다. 여기엔 ‘땅과 조상의 연결’, ‘후손 복’에 대한 믿음이 숨어 있는 것이다.
1. 땅과 조상의 영속성
'땅은 곧 가족의 터전이다' 논·밭은 그 가문의 생업이자 재산이다. 조상을 그 땅에 묻으면, 조상 혼령이 매일 땅을 지키고 복을 내려준다고 믿는다.
살아 있는 사람과 조상이 같은 공간에 머문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함께한다는 의미다. 집터 한가운데 혹은 밭 가장자리에 묘를 쓰면, 조상이 일터를 쉼터 삼고 후손을 돌본다고 여긴다. 즉 조상과 후손들이 현재에도 동행하고 있다는 개념인 것이다.
2. 공동묘지 대신 개인 묘역
마을 단위 공동묘지는 제한적이다. 자리가 차면 더 이상 땅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농사일을 하다가 바로 조상에게 고개 숙일 수도 있고, 제사 때도 논·밭에서 채취한 제물을 곧바로 올릴 수도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멀리 운구 차량을 쓰거나 장례식장을 빌릴 필요 없이, 자기 땅에 묘를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3. 풍수지리와는 다른 ‘현지적 풍수’
베트남 전통 지리는 역사적으로 대지(大地)와 현실적 사용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 “조상이 머물 만한 땅이면 어디든 좋다”는 식이다.
메콩 델타처럼 물이 자주 차는 지역에선 흙을 쌓아 언덕처럼 만든 뒤, 그 위에 무덤을 올린다. 이를 고지화(高地化) 방식이라 칭한다. 이는 비가 오고 물이 차도 조상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지혜다.
4. 농업과 장례 의례의 결합
베트남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입추·한가위)와 매장을 동시에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주변의 논·밭에서 바로 따온 쌀·과일·야채로 제단을 꾸민다. 이는 제물 장만·향·초 구입 등 장례 준비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갖는다.
베트남 전통 매장은 ‘조상=땅의 수호자’라는 믿음 아래, 논·밭과 장례 의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다. 땅을 지키고, 땅에서 복을 받으며, 땅 위에서 조상을 기리는 방식이 바로 그 핵심이다. 결국 배트남식의 전통 매장은 단순히 ‘땅에 묻는다’는 행위를 넘어, 후손이 조상의 뿌리를 되새기고 가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중요한 의식인 것이다.
다음은 베트남의 전통 매장 방식을 정리한 것이다.
1. 묘지 자리 선정
풍수(Phong thủy) 고려하여 묫자리를 선정하는데 이 때, 산세·물길·햇빛·바람 방향 등을 따져 고른다. 조상의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양택(家)’과 맞닿지 않는 음택(墓地)을 찾는 게 전통이다.
보통 시골 마을 한편에 가족 공동 묘역을 마련하는데 ,이는 대를 이어 같은 자리에 묘를 쓰면서 가족 뿌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2. 관(棺)과 입관 의식
전통적으로 마호가니나 참나무 같은 단단한 나무로 관을 만들고, 붉은색 혹은 검은색 옻칠을 입혔다. 관 뚜껑 윗면에는 고인의 이름·본관·사망일을 새긴 금·은빛 명판을 붙인다.
고인 몸을 깨끗이 씻고, 흰색 수의(장례복)를 입힌다. 일부 지역에선 평소 즐겨 입던 옷이나 직업을 상징하는 물건(예: 농기구 모형, 작은 책)을 관에 함께 넣기도 한다.
3. 운구 행렬
발인(發引) 전날, 가족·친척·이웃을 불러 빈소에서 통곡하며 고인을 기린다. 이 때 스님이나 영적 지도자가 앉아 불경을 읽고, 촛불·향을 피운다.
발인 당일에는 새벽이나 아침 일찍 동네 사람들이 함께 관을 집 앞마당으로 옮긴다. 전통 악기(드럼·징·피리)를 연주하는데, 이 연주가 망자(亡者)를 저 세상으로 인도한다고 믿었다. 일부 강가 마을에선 나룻배를 동원해 배로 운구하기도 했다.
4. 매장 의식
미리 판 묘지 구덩이에 관을 낮춘 뒤, 가족 대표가 흙 한 삽을 덮는다. 이후 이웃들이 차례로 흙을 떠서 덮고, 마지막엔 나무 판석 또는 돌비석(墓碑)을 세운다.
묘 위에 과일·음식·꽃을 올리고, 지역에 따라 쌀·술·종이돈을 태우기도 한다. 이 때 불교 가톨릭 등 종파에 따라 초·향·성경·불경 등이 달라진다.
5. 이후의 추모 의례
전통적으로 불교 전통에 맞춰 7일 간격으로 7번 제사를 지낸다. 49재(사망 49일째)를 중하게 여기며, 첫돌(1주기), 3돌, 7돌에 가족이 모여 제사를 올리고, 묘를 돌보며 깨끗이 관리한다. 또한 음력 정월·추석에 조상 제사를 겸해 묘역을 참배하기도 한다.
한국 전통과 닮아 있으면서도, 논·밭 한켠에 조상을 묻는 베트남식 매장 방식은 조상이 늘 후손 곁에 머물러 함께 살아간다는 믿음을 잘 보여준다. 선조의 뿌리를 실감하며 일상을 이어간다는 점이 참 아름답고, 그런 마음이 가족과 마을 공동체에 따뜻한 정을 더해 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