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너에게 가서 꽃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늘 신기하게 느끼는 장면이 있다. 간단히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도 될 순간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반드시 이름을 넣어서 인사를 한다. 직장 동료에게 “Chào anh Tuấn” (투안 형, 안녕하세요), 친구에게 “Chào Lan” (란, 안녕) 같은 식이다.
직원들이 내게 인사를 할 때도 그냥 “Chào”만 해도 무방한데, 꼭 이름을 붙여 "Hello, Mr.Han"이라고 한다. 아침에 만나서도, 집에 돌아 갈 때도. 한 번은 우스개 소리로 "여기 푸미에 모든 사람이 내 이름 Mr.Han이란거 다 아는데 왜 꼭 Mr.Han을 붙이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1. 이름을 불러야 마음이 닿는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끈 같은 존재다. 이름을 불러주면 상대방을 ‘개별적 존재’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에서 “야, 너” 하고 부르는 것과 “정호야” 하고 부르는 게 완전히 다르듯, 베트남에서는 이름을 빠뜨리면 뭔가 덜 친근하거나 무심해 보인다.
2. 유교적 전통과 서열 문화
베트남 사회도 한국과 비슷하게 유교적 전통이 깊다. 나이, 성별, 지위에 따라 붙이는 호칭(anh, chị, em, cô, chú, bác…)이 정교하게 나뉜다. 여기에 ‘이름’을 결합해 부르면, 예의와 친근함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예컨대 직장에서 후배를 부를 때도 그냥 “em”이라고 하지 않고 “em Hoa”라고 한다. 이름을 넣어야 관계가 더 선명해진다.
3. 이름 속에 담긴 가족과 정체성
베트남 이름은 성-중간이름-이름 구조인데, 가운데 이름이나 마지막 이름에 가족의 소망이나 의미가 담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Thúy”는 섬세함, “Hạnh”은 덕행, “Dũng”은 용기 같은 뜻을 가진다. 이름을 불러주는 건 단순히 소리내는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4. 일상에서의 체감
직장에서 동료들과 아침에 “투이, 오늘 아침 잘 잤어?” 하듯 이름을 넣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마트에서 만난 지인에게도 “Lan, đi chợ à?” (란, 장 보러 왔어?)라고 한다. 처음엔 왜 이렇게 이름을 자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걸 알게 됐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이름을 통해 거리를 좁히고, 이름을 통해 예의를 지킨다. 그래서 “호칭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상대방은 ‘한 개인’으로 인정받았다고 느끼고, 관계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