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도 당황하지 않는 응급대응 체크리스트
'해외에서 제일 서러운 때는 아플 때'라고 하는데...
어제 고객 한 분으로부터 배달 주문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이상한 주문을 더하는 것이었다.
'...배달하시는 기사분께 부탁드리면 기사분이 약국에서 약도사다 주시나요??' 속으로 괘씸한 생각마저 들었다.
'장난치나?' 한국에서 안 하던 짓을 베트남에 와서 현지인들을 우습게 보더니 모두 우습게 보이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직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배달회사를 쓰는 것이라 음식배달외엔 어렵습니다'라고 정중히(?)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잠시후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아하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약국을가고싶은데 아파서 걷지를못해서 혹시나 여쭈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메시지를 보니 생각이 반전되었다. '무슨 사고라도 난건가?' '저렇게 아픈데 옆에 챙겨주는 사람도 없나?'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무슨 약을 찾으시는지 물어보았다.
'급성 통풍이와서요..약을 뭐사야 할 지는 여기저기에서 알아봐 두었는데 구할 방법이 없네요'
보내온 사진을 들고 약국을 찾았다. 보내온 사진들의 세가지 약은 모두 비슷한 효는이 있는 약이라며 두 가지만 드려서 충분할 것이라는 약사의 말에 두 가지의 약을 구입해, 손님에게 약을 복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드리고 음식과 함께 배달해 드렸다.
배달을 어떻게 주문하는 지도 모르고 대금 정산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는 걸 보면 베트남에 파견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분인 듯 하다. 그런데 저렇게 아프면 얼마나 힘들고 서러울까? 싶은 마음은 겪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해외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몇가지 정리해 보았다.
1. 현지 응급의료 연락처와 절차 파악
병원·클리닉·구급차 번호 등을 휴대폰, 메모장 앱, 종이 카드에 저장한다. 베트남 응급 번호는 앰뷸런스(응급의료) 115, 경찰 113, 소방 114이다. 전화를 할 때 국번, 지역번호 등 없이 바로 숫자만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면 된다.
응급실(ER) 위치와 운영시간, 진료 언어(영어·현지어) 여부를 미리 확인해 둔다.
긴급 상황 시 직접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 대비해, 현지 지인을 통해 픽업 요청하거나 택시 호출 방법을 생각해 둔다.
2. 비상약품 키트 준비
기본 상비약(진통제, 소화제, 지사제), 처방전 약(만성질환 약·알레르기 약)과 함께 감기약, 몸살 등 본인이 자주 쓰는 약을 준비한다.
사용법, 용량, 복용 주기를 메모해 두고, 유통기한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소량의 현지 화폐와 비상용 비자·여권 사본을 키트 안에 넣어 두면 유사 시 유용하다.
3. 현지 언어로 할 수 있는 기본 의사소통 정리
“아파요”, “병원에 가야 해요”, “어디 아픈지 알려 주세요” 같은 필수 문장을 현지어로 적어 둔다.
약사·의사 앞에서 복용 방법을 설명받을 때 쓸 수 있는 짧은 질문 예문(“몇 번, 언제 먹나요?”, “부작용 있나요?”)을 연습해 둔다.
번역 앱, 오프라인 사전 앱을 설치하고 위급 상황에 대비한 바로가기 문구를 즐겨찾기 해 둔다.
4. 비상연락망·대사관·영사관 정보 확보
가까운 한인회, 현지 지인 네트워크, 숙소 관리자 연락처를 공유해 두고, 서로 비상시 도움을 주고받기로 약속한다. 한국 대사관·영사관 연락처, 주소, 운영시간을 휴대폰과 종이 메모에 저장한다.
가족에게 현지 주소·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정기적으로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아 긴급 시 빠르게 연락할 수 있게 한다.
※ 필자는 솔직히 긴급한 상황에서 영사관, 한인회 등을 찾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중에 인력부족 등의 핑계를 듣는 것도 싫지만 현실적으로 바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바로 연락하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내가 허리가 아파 숙소에서 이틀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던 적이 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주 월요일 아침 전화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난리가 난 것이다. 아침에도 전화가 없는데 저녁에도 그 다음 날에도 전화가 없는 걸 보면 '분명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고 어머님이 누나에게 연락을 해서 전화가 왔다. 그 사건 이후 누나는 베트남에 있는 친구, 심지어 매장의 매니저의 핸드폰 번호까지 기록을 해 놓고 있다. 무슨 일이 생겨 연락이 안되면 다른 사람을 통해 안전여부를 확인하시려는 것이다.
오늘 오후 그 고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사장님 어제 약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무엇보다 지금 마음이 놓이는 것은 그분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연락할 사람이 생겼다' 라는 점이다. 그렇게 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자기 주변에 항상 긴급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는 것이 해외생활의 기본 준비사항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