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짧은 만남 그리고 깊은 사랑

딸과 함께 한 운전 연습과 아들과의 짧은 만남 이야기

by 한정호

지난 해 12월초에 한국에 다녀 온 나는,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대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 번 출장에 아들이 서울에 올라올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한 주 전에 다녀갔기에 내려올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하루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강원대 삼척 캠퍼스, 시외버스를 타추고 가면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고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것 등을 계산하면 오가는데에만 적어도 10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 될 듯 했다. 아들 녀석도 "일정도 바쁘시고 힘들텐데 오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하지만, 꼭 보고 오는 것이 도리이자 내겐 큰 기쁨이라는 생각에 차를 가지고 움직이기로 했다.

미팅 일정과 가족들과의 모임 등을 고려해 보니 왕복 이동시간과 미팅 시간을 커버해 줄 수 있는 날은 귀환하기로 한 전날 월요일 오후 뿐이다. 5시에 수업을 마친다고 하여 월요일 아침 미팅을 하고 점심식사후 바로 출발하면 될 듯 했다. 일정을 세울 때가지만 해도 걱정이 앞서기는 했다.
'몇 개월만에 차량을 운행하는 것인데, 장거리 운행인데 혹시 차량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돌아오는 시간이 지체되어 대중교통이 끊기면 인천 부모님 댁으로 가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부모님도 무리해서 꼭 갔다 올 필요가 있냐고 하시는데 걱정이 많으신 듯 하여 나도 내심 불안함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소식이 들여왔다. 딸아이가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가며 딸아이가 얘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딸아이는 한가지 조건을 제안했다. 얼마전 운전면허를 취득했는데 운전 연습을 한 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월요일이고 출퇴근 시간대도 아니니 넓고 한적한 곳이 있으면 운전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흔쾌히 승락했다.


인터넷에서, 동해 삼척 바다의 일몰을 보면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

주변 횟집에서 일몰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탐방로를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일정을 세우다 보니 학교에 갔다가 오가는 데에만 또 40~50분이 소요될 듯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학교에서 가까운 삼척항 주변의 횟집센터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월요일 오전, 절대 운전 조심하라는 아버님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항상 나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직장 후배를 만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같이 했다. 딸아이는 약속한 시간에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네비에서 알려 주는 도착 예정시각은 17:05분.

예전에도 딸아이롸 드라이브를 하면서 사는 얘기를 하곤 했기에 남친, 취업, 결혼 얘기 등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 잎에서 예상 밖의 질문이 날아왔다.

"아빠의 정치색은 어떠세요?"

"아빠도 해외 있으시면서 투표 가능하세요?" 로 시작한 대화는 점점 내용이 깊어졌다.

...

전에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선거날은 쉬거나 놀러가는 날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큰 누님과 이동하면서 조카들의 정치 성향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소위 '청년들의 정치 의식이 정말 높아졌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 딸아이도 먼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놀랐다. 큰 누나의 남자 조카는 소위 태극기 부대 정도의 극우, 여자 조카는 페니미즘을 강조하는 극좌라며 유튜브 등 각자들만의 체널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그 생각에 몰입하는 것 같다는 큰 자형의 말씀에 걱정이 들기도 했다.

딸아이는 몇 번이고 "진심을 말하자면..."이라며 자신은 극좌도 극우도 아닌데 "그래도 이재명은 절대 안돼서..."라는 말을 한다.

우리 세대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되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 다음 대통령을 뽑으면서도 정책을 가지고 선거를 치르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만은 안되서 다른 사람에게 투표해야 하는 이런 무능하고 더렵혀진 정치인 세력들을 만들어 놓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문제인 듯 하다는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는 언젠가부터 정치, 정치인에 실망하고 혐오하게 되어서 지난 번부터 해외 부재자 투표도 안 했다고 서스럼없이 이야기했다가 속으로 '아... 어쩌면 이런 내 모습도 이런 정치환경을 만들어 버린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속 상하고 미안한 정치 이야기였지만, 딸아이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좀 더 객관적이게 정보도 수집하고, 의견도 소통하면서 이제는 제대로 된 정치 세계를 만들어 보길 희망한다.


고속도로는 정말 한산했다. 상하선 차량중에 관광 버스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딸아이의 운전연습이 생각나 "차량도 많지 않은 듯 한데 한 번 해볼래?" 라고 물었다가 답변에 깜짝 놀랐다.

"네!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악셀과 브레이크를 혼돈해서 처음 주행시험에서 떨어졌었는데, 아빠가 옆에서 좀 더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허허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오늘은 안전이 최고일 듯 해" 시간도 촉박하고, 그 정도를 여기서 연습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고 얘기하자, 바로 수긍을 헀지만 아쉬움은 얼굴에 제대로 새겨져 있었다.

'난 아빠랑 운전연습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따라왔는데...'라는 표정.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그 너른 휴게소 주차장엔 대여섯 대의 차량들만 세워져 있었다. 간식거리와 커피를 사들고 온 딸아이에게 "지금 한 번 연습해 볼래?"라고 하자 눈이 반빡인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앉더니 깊은 쉼호흡을 한다. 급발진을 걱정하며 조마조마 했는데, 아예 악셀을 밟기 못하고 차량을 밀고 가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몇 번을 조심스래 달래 악셀을 밟아보고 휴게소 주차장을 두 바퀴 돈 후에 "이제 우리 길 가지"라고 하니 안도하는 듯 기뻐하며 자리를 내어준다. 주행 연습을 한다고 하는 것이 귀엽기만 하다.

'이렇게 해서야 언제 서울 도로에서 주행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우선 아빠가 한 약속은 지켰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을 안고 휴게소를 빠져 나와 다시 삼척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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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알려준 학교의 기숙사에 도착한 시각은 17:15. 도로는 한산하고 속도도 평균이상으로 달린 것 같은데 예정된 시간보다 더 많이 걸렸다.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는데 이렇게 걸리면 갈 때는 밤이고 더 늦어지면 문제인데...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착한 것이냐?! 도착을 했으면 전화를 해서 알려줘야지. 집에서는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하는데...

이제 삼척에 도착해서 학교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마쳤지만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걱정이 더해졌다.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언장관

기숙사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자연에 둘러쌓여 평온하고 깔끔하게 생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도 자기도 여기와서 공부하고 싶다며 만족해 하는 모습에 마음이 더욱 놓인다. 우리를 본 아들은 지금 빨래를 하고 있는데 15분이 걸린다고 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순간 딸아이의 운전이 생각났다.

"재현아 여기서 운전 연습 해보자"

아들이 나오기 전까지 기숙사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마지막엔 자기가 주차를 시켜보겠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아직 서울 어디도 운전을 할 상태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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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삼척캠퍼스 언장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속초항에 도착하니 인터넷으로 찾아본 회센터는 항구 보수 공사로 닫혀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대게 식당들이 해변가를 끼고 모여 있었는데 딸아이가 좋아하는 회와 대게를 같이 판매하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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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6_180552.jpg 삼척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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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최근 걱정을 들으면서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연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딸아이가 내 곁에서 긴장된 얼굴로 악셀을 밟는 모습, 아들이 평온한 기숙사 앞에서 웃으며 인사하던 순간이 고스란히 가슴에 남았다. 비록 먼 길이었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함께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속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도 이런 소소한 만남을 자주 기획하고, 그때그때 느낀 감정과 대화를 기록하며 기억 속에 오래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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