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끝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마음, 그 한 잔의 맥주에 담긴 정
이 번 한국 방문은 아버지의 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일정이었다.
지난 번 방문때 일이다. 전세을 주고 있는 단독주택의 현관이 낡아 폭우나 강한 비바람에 쓰러져 지나가는 차량이나 행인에게 피해가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청을 방문하고, 벽면 해체를 통한 주차장 확대 및 지원에 대한 사항들을 협의하고 신청서를 받아와 설명드리고 빨리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 드리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얼마전 어머님과의 통화에서 아직도 신청을 하지 않았고, 아버님이 결정을 하지 않으셔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조카가 그 집의 일부를 매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다 하시며 내가 와서 그 집을 어떻게 운영할 지 상의하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지난 해 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쿠데타를 시도하고 국회에서 비상계엄령 해제 결의가 끝난 12월 4일에 베트남으로 귀환하였으니 6개월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도, 대학교 입학도 곁에서 축하해 주지 못한 상태라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바로 인터넷을 통해 항공권을 예매하였다.
저녁 늦은 시간에 부모님 댁에 도착했는데 이미 주무셔야 할 시간인데도 아버님은 주무시지 않고 나를 맞아 주셨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먼저 그 집의 수리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마음이 편해지고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말씀에 힘도 생기고, 움직임도 활발해 지신 걸 보니, 건강이 더 좋아지신게다'
벽과 현관 철거는 할 필요도 없고, 그림까지 그려 가시며 그 집의 현관 지붕을 어떻게 고칠 지 설명하셨다. 이제 이 문제는 더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미 한 번 결정하신 것에 토를 다는 것 자체가 분란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에 이상 없다면 아버지 결정대로 하시지요"라고 말씀드렸다.
"네가 더 가 볼 필요도 없다"라고 하시면서 지인분께 아버님 방식대로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셨다고도 하신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집을 방문하고 구청에 가서 신청을 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방문기간중 하루 이틀은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네. 그럼 무엇을 하지?'
다음 날 오후 미팅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집에 있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어제 저녁 아버님의 월남전 때 사진과 부모님의 젊은 날 사진첩을 꺼내 내 핸드폰 카메라에 옮기면서 떠올랐던 방문지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오전에 국립 현충원을 방문하였다.
일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찾았던 현충원.
함께 참전하셨던 전우분이 모셔진 충혼당에 오셨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이 친구가 여기 있으니 나도 여기로 와도 되겠구나"하시며 눈시울을 적시시던 모습.
아버님과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이 곳 서울 국립현충원의 납골당에 모실 지, 아니면 지방 국립 현충원의 분묘에 모실 지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래도 땅에 묻혀 있어야 편하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식들이 한 두 번이라도 찾아 오려면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아직 결정을 내리시지 못하고 계셨던 차였다.
현충원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묻혀 계시는게 무엇이 문제인가? 자식이 부모님을 뵈러 올 생각을 한다면 서울이나 대전이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머님 생전에 너무 늙으셔서 몇 시간 이동이 불편하셔서 모시고 못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다음 날 져녁, 어머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네 아버지가 요즘은 부쩍 가실 날을 걱정을 하시는 것 같다"라고 하신다. 말씀이 나온 김에 현충원에 갔다 온 이야기와 아버님은 분묘에 모시는게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도 고민을 하셨었는지 바로 납골당의 실태에 대해 말씀하신다. "현충일이나 명절에 현충원을 찾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을 서 대기하기도 하고, 납골묘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인사만 하고 나온다고 한다"시며, 분묘로 모시는 게 좋겠다라고 하신다. 어머님이 다음에 아버님께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 문제도 결정이 된 듯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 날 저녁, 내가 왔다고 준비해 놓으신 소고기에 푸짐하게 저녁을 먹은 후였다. 몸이 좋아지신 걸 도 한 번 느끼게 아버님이 산책을 다녀 오겠다 하시며 밖으로 나가셨다. 10여분이 지났을까? 어머님의 핸드폰 벨이 울리고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혹시 넘어지시기라도?'
"다치셨대요?"
조금 말씀을 나누시더니 어머님이 내게 핸드폰을 건네셨다. 목소리가 정정하셨다.
"여기에 돼지껍데기 파는 집이 있는데 소주 한 잔 할래? 나도 한 두 잔 마실 수 있고..."
안도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슨 일이실까?'라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발길을 재촉하였다.
도로 길가의 벤치에 앉아 계시던 아버님은 나를 보시더니 몸을 일으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포장마차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요즘 가끔 산책을 나오면 혼자서 저 멀리까지 다녀오신다고 자랑(?)을 하신다.
월남전 참전했던 이야기를 들어보려 월남전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친구분들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지금 90이 넘으신 동창생들이 4명 있는데 한 분은 치매가 와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유치원 학생들 통학하듯이 차량이 와서 요양원 같은 곳에서 낮에는 계사다가 온다고 한다. 또 한 분은 아버님보다 훨씬 정정하게 지내시고 계신다면서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시기도 한다. 마지막 한 분은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집안에서도 누웠다 앉았다만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이제 나도 나이가 늙었으니..."라며 말 끝을 흐리셨다.
마음이 심난했다.
10여분을 더 걷고 나서야 아버님을 도로 맞은 편의 한 식당을 가리키셨다. 그 식당은 얼마 전에 오픈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했다가 먹는 걸 보셨다며 "한 번 가보자"고 하셨다. 식당 앞에 가보니 그곳은 포장마차 같은 주점이 아니라 고기 뷔페 식당이었다.
"여기는 고기 뷔페 집인데요. 방금 고기로 저녁 식사도 하셨는데... 다음에..."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말씀하셨다.
"돼지 껍데기에 소주 한 잔 하면되지."
두말 할 것도 없이 모시고 안으로 들어 갔다. 젊은이들이 한껏 고기를 구으며 술을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래도 아버님은 기분이 좋으신게다.
아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술 한잔 하고 싶으셨던게다.
고기 뷔페이다 보니 그래도 종류별로 고기 한 두 점씩을 들고와 구우면서 같이 맥주를 마셨다.
그곳에서 별다른 말씀은 없었다. 그저 아버님의 사랑을 눈과 가슴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아버님의 소심한 제안과 배려였다.
베트남으로 귀환하기 하루 전날, 아들을 보기 위해 삼척에 다녀 왔다. 왕복 8시간을 운전하고 돌아온 것이다. 삼척에 도착했는데도 왜 연락을 안 했냐? 는 호통도,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도 '전 날 그렇게 늦게까지 다니냐?'는 나무람과 꾸중도 내게 대한 걱정과 사랑이시리라.
그 정정하신 호통도 오래 듣고 싶다.
아버님의 소심한 제안과 호통이 이번 한국방문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