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병사, 아버지를 기억하며

월남 파병, 백마부대 육군항공대 정찰조종사의 기록

by 한정호

이번 한국 방문중에 중요한 일정중 하나는 아버님의 월남전 당시의 사진들을 확인해 보는 것이 있었다. 항상 월남전에 파병하셨던 국가 유공자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셨는 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내심 부끄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20250523_070455.jpg 인천 부모님 아파트 현관문에 부착되어 있는 국가 유공자 표식

빛 바랜 사진첩에서 아버님의 젊은 군인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250523_222623.jpg 직접 모셨던 L-19/O-1 Bird Dog 앞에서 포즈를 취하신 아버님 모습
20250523_223508.jpg 파병부대 막사 주변에서 포즈를 취하신 아버님

무채색의 빛바랜 사진 속 아버지는 하얀 비행복을 입고, 작고 단단한 경비행기 옆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눈빛 속에는 어린 내가 알 수 없었던 시간의 깊이와 무게가 담겨 있었다.

“킴낭 비행장 (Kim Năng Airfield, 당시에는 '킴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투이호아(Tuy Hòa) 지역. 거기서 정찰기 몰았었지.”


아버님께 월남전 파병 지역을 조심스레 여쭈었더니, 아버님은 천천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백마부대, 육군항공대, 그리고 킴낭비행장

아버님은 1960년대 후반, 백마부대(제9보병사단) 소속 육군항공대 정찰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하셨다. 아버님의 부대는 중남부 푸옌성 투이호아 지역에 주둔하며, 그 인근의 킴낭비행장을 거점으로 작전을 펼쳤다고 하신다.

“난 전방에서 싸우는 병사는 아니었지. 하지만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눈이었어.”

아버님의 임무는 공중 정찰과 관측, 포병 유도, 통신 중계였다. 즉,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포탄이 정확히 어디로 떨어져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매일 하늘을 날며 정글과 계곡, 마을 위를 저공으로 순찰하셨다.


조종간 위에 얹힌 생사의 무게

아버님이 몰던 비행기는 L-19/O-1 Bird Dog라는 소형 고정익 정찰기였다. 빠르지 않지만, 천천히 오래 날 수 있는 기체. 비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속에서도, 아버님이 내려다본 땅 위에는 늘 누군가의 생명이 있었다.

“포격 유도를 하다 보면, 그 아래에 내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 그래서 한 치도 실수할 수가 없었지.”


아버지의 전쟁은 그렇게 하늘 위에서 흘러갔다.

킴낭비행장은 격납고 대신 드럼통을 쌓아 만든 벽이었고, 활주로는 철판 위였다. 비행기 아래서 사진을 찍는 아버님의 모습은 겉으론 단단했지만, 아마 속으로는 수많은 날들을 되새기고 계셨을 것이다.

20250523_222527.jpg 막사옆에서 포즈를 취하신 아버님 모습

아버님의 전쟁은 땀 흘려 땅을 디디는 병사들과는 다르지만, 늘 가장 먼저 전장을 바라보고, 가장 가까이 생사에 닿아 있던 전쟁이었을 것이다.


어머님도 옆에서 사진을 같이 보시던 중,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한 번은 아군도 하나 없는 밀림 지역에 홀로 정찰기를 착륙을 하셨다 하드라. 미쳤지. 그 곳이 어떤 곳인데..."


오늘은 이번에 핸드폰으로 옮겨 온 아버님의 젊으셨을 때의 사진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보려 한다. 탄선녓 공항으로 입국하여 푸미 지역으로 건너 오면서 그렇게 평화롭게만 보였던 저 들판과 바나나, 야자수 수풀들이 아버님이 그 긴장감과 불안함을 안고 둘러보셨던 곳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리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20250523_224048.jpg 당시 촬영하신 파병 지역 사진

지금 다시, 그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말씀이 없으셔도 그 생활에서 느꼈던 공포와 불안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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